(서울=연합뉴스) 이 율 이대희 기자 =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치 일정을 앞두고 얼굴에 분칠한 정도가 아니라 정치판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9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을 묻는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 "경제정책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를 극복하는 게 더 시급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러브콜'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부총리를 그만두고는 모든 제의를 사양하고 조용히 지내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면서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에서였다"면서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염려해도 모자랄 판에, 대결과 갈등만 증폭되는 정치 구도에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경제와 민생을 위해서라도 정치판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여지를 남겼다.
그는 2018년 12월 퇴임 뒤 미국 미시간대 초빙교수를 거쳐 작년 말 귀국했다. 최근에는 '유쾌한 반란'이라는 이름의 비영리법인 설립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려 한다'고 운을 뗐던 그는 '가보지 않은 길'이 어떤 길이냐는 질문에는 "우리 경제와 사회문제의 핵심은 기득권"이라면서 "나부터 기득권 내려놓기를 하면서, 남이 안 가본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년여 만에 다시 만난 김 전 부총리의 표정에서는 넉넉한 여유가 읽혔다.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 탓에 피로와 날카로움을 숨기기 어려웠던 부총리 시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재임 시절에는 갑옷 같은 양복을 입었지만, 이제는 배낭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출마와 관련한 여론조사가 진행됐다는 이야기가 될 정도로 이른바 '유력 주자'인 김 전 부총리는 출마와 관련해 '노 코멘트'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제 궤도에 올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은 김 전 부총리와의 일문일답.
-- 사단법인 명칭이 '유쾌한 반란'인데. 취지와 활동 계획은.
▲ 유쾌한 반란은 전부터 제가 했던 말이다. 환경과 자기 자신,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사단법인은 그 중 사회변화를 추구한다. 지금 우리는 혁신 공화국으로 가야 한다. 아래부터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유와 연대의 가치가 중요하고, 말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 구멍뒤주, 계층이동 사다리, 소셜 벤처 등 세 가지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려 한다.
-- 부총리까지 한 고위 관료로서 사단법인 설립은 예상을 깬 행보인데. 이것인 '안 가본 길'인가.
▲ 우리 경제와 사회 문제의 핵심은 기득권이다. 사회 여러 부문에 걸쳐 있는 기득권과 기득권 카르텔을 깨지 못하면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기득권은 구조개혁을 통해 깨야 하지만, 기득권자들의 각자 내려놓음도 필요하다. 고위 공직을 한 사람으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부터 기득권 내려놓기를 하는 것이다. 남이 안 가본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좋은 생각, 좋은 말보다 작더라도 실천에 옮겨지는 게 중요하다.
-- 본인이 계층 이동의 대표주자이자 상징 같은 존재다.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 사회적 이동이 왜 중요하냐, 계층이동 단절되면 사회 역동성을 막는다. 그러면 혁신이든 포용이든 끊긴다. 내가 내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배경으로 결정되는 사회는 그렇다. 앞으로 어찌할지 올 상반기 동안 생각을 해보겠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개발하려고 한다.
-- 만약 10조원을 드린다면 계층이동과 관련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 첫 번째 후보는 교육이다. 옛날에는 교육 통해 계층이동을 했는데 지금은 부와 사회적 지위가 교육을 통해서 대물림된다.
-- 사단법인 회원 모집과 재정 등 운영 계획은.
▲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에게 자발적인 참여를 호소하려 한다. 물질, 재능, 배려의 마음, 아이디어, 시간 등 각자의 사정에 맞게 여러 형태로 참여할 수 있다. 연령, 직업 등 관계없이 온·오프라인 크라우드 펀딩 식으로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을 참여할 분들과는 법인 운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체결한다. 모든 수입과 지출, 운영은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사장 등 임원은 무보수로 자원 봉사할 계획이다.
-- 총선을 앞두고 여러 군데서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사람으로 국민에게 송구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여러모로 부족하다. 공직자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는 해명이 안 된다. 사회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부총리를 그만두고는 모든 제의를 사양하고 조용히 지내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에서였다.
-- 정치권 러브콜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 노 코멘트다.
-- 퇴임 후 지방 행보를 한 것이 총선이나 시도지사, 심지어는 대선을 위한 행보라는 말까지 돌았다.
▲ 대권이라니.(웃음) 서울 떠나있고 싶었다. 여러 군데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와서. 지방에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집사람과 함께 다녔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들을 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실 만나러 간 것도 아니다. 시민, 이웃분들이 저를 알아보시고 또 강의 요청도 하신 것이다. 무슨 의도가 있겠는가.
요.
-- 올해 경제 전망을 어떻게 하는지. 경제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 많은 분이 경제의 어려움을 걱정한다. 이런저런 생각은 있지만, 직전 부총리로서 경제 상황이나 전망과 정책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현직에 있는 분들의 몫이다. 경제정책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염려해도 모자랄 판에, 대결과 갈등만 증폭되는 정치 구도에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 정치 일정을 앞두고 얼굴에 분칠한 정도가 아니라 정치판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경제와 민생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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