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동남아]② '역동의 베트남' 한중일 진검승부 축소판

입력 2020-01-19 08:00  

[이제는 동남아]② '역동의 베트남' 한중일 진검승부 축소판
한국과 일본, 투자 1위 쟁탈전 치열…간접투자도 큰 폭 증가
미중 무역전쟁으로 고율 관세 피하려는 중국, 작년 투자 봇물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은 한국과 중국, 일본 기업이 앞다퉈 진출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3국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이 베트남에 잇따라 대규모 투자를 해 한국이 누적 투자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운데 2017년부터 일본의 추격이 거세졌다. 또 지난해부터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여파로 고율 관세를 피하려는 중국 자본이 쏟아지고 있다. 19일 코트라(KOTRA) 베트남 하노이무역관과 베트남 투자계획부에 따르면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31년 동안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 총규모는 677억710만달러(약 78조6천억원)로 전체의 18.7%를 차지하며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일본이 593억3천380만달러(약 68조9천억원)로 2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몇 해가 멀다 하고 1위가 바뀌고 있다. 양국 간 투자순위는 그야말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일본은 2012년부터 제조업을 중심으로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파격적으로 늘려 2013년까지 2년 연속 투자 1위 국가로 등극했다.
그러나 2014년 삼성디스플레이가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 10억달러(약 1조1천600억원) 규모의 공장을 설립하는 등 한국 기업의 투자가 급물살을 타면서 그해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한국이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일본이 2017년 베트남 중부 타인호아 성에 28억달러(약 3조2천500억원) 규모의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등 투자 규모를 대폭 늘리며 역전한 뒤 2년 연속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2019년에는 한국이 전체의 23.2%인 52억4천900만달러(약 6조900억원)를 투자해 1위로 재부상했다.
제조업이 38억9천만달러(약 4조5천100억원)로 전체의 74.2%를 차지했고, 도소매 및 유지보수 9.9%, 부동산 경영업 7.7% 등의 순이었다.
우리나라는 주식 매입이나 지분 투자 등으로 베트남 기업에 대한 간접 투자도 해마다 큰 폭으로 늘려나가고 있다.
2017년 8억4천만달러(약 9천700억원)에서 2018년 12억8천만달러(약 1조4천800억원)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26억7천만달러(약 3조1천억원) 규모로 급증해 직접투자의 50.8% 수준까지 치솟았다.
SK그룹이 2018년 9월 베트남 마산그룹 지분을 5천여억원에 인수했고, 지난해 5월 빈그룹 지주회사 지분 약 6.1%를 10억 달러(약 1조1천800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KEB하나은행도 지난해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의 지분 15%에 해당하는 주식을 1조14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금융·보험업, 제조업, 부동산 경영업을 중심으로 한 간접투자는 2천959건으로 건수 면에서 이미 직접투자(1천594건)를 훌쩍 넘어섰다.
이에 따라 작년 한국의 직·간접 투자 규모는 79억2천만달러(약 9조2천100억원)로 전체의 20.8%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가 지난달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베트남은 한국을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며 한국과 베트남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심화, 확대하려고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베트남에서 '투톱' 위상을 굳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3자 경쟁 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난해 직·간접 투자 규모는 40억6천만달러(약 4조7천100억원)로 일본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위를 차지한 중국령 홍콩의 투자를 합산하면 119억3천만달러(약 13조8천500억원)로 월등한 1위가 된다.
중국은 특히 타이어 제조, 철강, 화학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으나 위험 분산 등을 위해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본의 직·간접 투자도 지난해에는 41억4천만달러(약 4조8천억원)로 4위에 그쳤지만,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820개 일본 기업 가운데 42.1%가 2020년 아시아에서 가장 촉망받는 투자처로 베트남을 꼽아 치열한 투자 경쟁을 예고했다.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집권 자민당 간사장이 최근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베트남을 공식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베트남은 세계 11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편입됐고, 유럽연합(EU)-베트남,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홍콩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시권에 들어와 해외투자 열기가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과 사회적 안정, 비교적 잘 갖춰진 인프라도 해외투자 유인 요인으로 꼽힌다.
김한용 하노이 한인상공인연합회(코참) 회장은 "베트남에서 한국과 일본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쟁에 가세했다"면서 "경쟁이 과열돼 가파른 임금상승과 숙련 노동자 쟁탈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러나 '박항서 매직' 등으로 한류 바람이 거세 우리나라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고, 여전히 임금이 낮고 풍부한 노동 가능 인구가 있어 상당 기간은 투자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youngky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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