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연정 사법제도 개혁 놓고 분열…일부 야권과 손잡아

입력 2020-01-17 19:14  

이탈리아 연정 사법제도 개혁 놓고 분열…일부 야권과 손잡아
작년 9월 연정 출범 이후 의회 표결에서 처음 단일대오 무너져
연정 위기 고조 속 오성운동선 또 탈당자 나와…한달새 5번째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내홍이 심화하고 있다.
연정의 주요 축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이탈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이번에는 사법 시스템 개혁을 두고 연정 내 갈등이 폭발했다.
16일(현지시간) ANSA 통신 등에 따르면 여권으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비바(IV)가 연정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반기를 들고 우파 야권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IV는 지난 9월 오성운동과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이 새 연정을 구성한 직후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을 탈당하고서 만든 중도 정당이다.
렌치 전 총리와 함께 민주당을 떠난 테레사 벨라노바 농업장관 등 일부 내각 인사가 속해 있어 오성운동, 민주당과 더불어 연정의 세 축을 이루는 정당이다.
렌치 전 총리는 신당을 만들며 연정을 계속 지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여러 정책에서 오성운동-민주당과 의견을 달리하며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특히 공소시효 제도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사법개혁에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연정의 토대를 흔들었다.



오성운동 소속의 알폰소 보나페데 법무장관은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법원 판결이 나오도록 하는 사법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해 작년 말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재판 절차가 늘어지기로 유명하다. 1심부터 최종심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다른 나라의 1천200배에 이른다고 유럽인권재판소가 지적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을 피해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18년에만 이런 케이스가 12만건 있었다고 한다. 좋은 변호사를 써 어떻게든 재판을 더디게 만드는 게 이탈리아 범죄자의 지상목표가 된 지 오래다.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해 이런 사법적 구멍을 메우자는 게 보나페데 개혁안의 취지다.
이 안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나 극우정당 동맹을 중심으로 한 우파연맹은 끊임없이 이 개혁안을 중도 폐기하려 시도해왔다.
개혁안이 사법 안정성을 저해할뿐더러 재판 기간을 오히려 늘릴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5일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설립한 전진이탈리아(FI)가 이를 뒤집는 법안을 제출해 표결까지 갔다가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가까스로 이를 저지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IV는 이 표결에서 우파 연합에 가담해 연정 내부의 지탄을 받았다.
연정 파트너 사이에 정책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의회 표결이 진행되면 힘을 모으는 게 관례였는데 IV가 연정 출범 이후 처음으로 표결에서 단일대오를 이탈한 것이다.
현지 정계에서는 IV의 이번 반란이 향후 연정 와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개혁안을 발의한 보나페데 장관은 이와 관련해 "IV는 개혁안을 저지하고자 야권과 손을 잡음으로써 연정 내 고립을 자초했다"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IV는 연정에 등을 돌린 게 아니라 '법 원칙'을 지키려는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렌치 전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는 극우 정치인 마테오 살비니의 집권을 저지하고자 연정을 구성한 것이며, 오성운동처럼 변질하길 원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연정 정책이 우리 가치와 맞지 않으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오성운동에서 또 한 명의 상원의원이 당을 떠나면서 연정 붕괴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루이지 디 마르초 상원의원은 16일 당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이 측근들에 너무 많은 권력을 몰아주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며 전격적으로 탈당계를 냈다.
최근 한 달 새 오성운동의 5번째 탈당 인사다. 이에 따라 전체 321석인 상원에서 연정이 차지하는 의석수는 과반(161석)에 살짝 못 미치는 159석으로 내려앉았다.
연정으로선 과반 유지를 위해 소수 정당의 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부패한 기성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걸고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은 2018년 3월 총선에서 33%의 득표율을 올리며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후 기존 정당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현재는 지지율이 15% 안팎까지 추락했고, 이에 대한 책임론과 맞물려 지도부에 대한 비토가 쏟아지며 내분에 휩싸인 상태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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