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우리 경제가 작년 성장률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2%를 가까스로 지켰다. 한국은행은 22일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라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1%대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었지만, 재정지출 총력전을 편 정부의 막판 노력에 힘입어 4분기 성장률을 1.2%로 끌어올리면서 2%에 턱걸이 할 수 있었다.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대외변수가 결정타였다고는 하지만 이번 성장률은 석유파동(1980년)과 외환위기(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등 나라가 휘청인 위기 국면을 제외하곤 경험해보지 못했던 낮은 수치여서 우리 경제가 추세적 저성장에 진입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잠재성장률(2.5∼2.6%)에 크게 미달한 점이나, 전년의 2.7%에 비해 성장률 감소 폭이 컸던 것은 우리 경제의 심폐 기능이 허약함을 보여준다.
이제 관심은 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 목표인 2.4%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다. 정부는 지난해보다 글로벌 통상 환경이 개선되면서 수출이 살아나고 있는 데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도 회복될 기미가 보인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일단 작년 2분기와 3분기 마이너스로 성장률을 갉아먹었던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4분기에 플러스로 돌아서고 민간소비도 다소 회복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올해 경제 여건을 낙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성장 목표 달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작년 세계 경제를 위축시켰던 미·중 무역전쟁은 1단계 합의로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후속 협상에 난제가 많아 언제 다시 돌출할지 모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지난해 2.9%보다 높은 3.3%로 제시했지만 전망치를 계속 하향 조정하고 있어 우려를 키운다.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회복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지만, 이 역시 장담하긴 이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의 수출은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의 반등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2% 감소했다. 경제 현실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안갯속 형국이다.
추락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확장 재정이 불가피하다. 작년 4분기 1.2% 성장률에서 정부의 성장 기여가 1.0%포인트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도 대폭 팽창한 정부 예산이 성장률 지탱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제시한 장단기 성장 전략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민간·공공 분야에서 100조원의 투자를 일으키겠다는 공언이 허언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는 그간 확장 재정 정책이 민간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으나 실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민간의 투자 충동이 살아나지 않고는 경제 여건의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투자 장애 요인을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거해줘야 할 것이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1천조원이 넘는 시중 부동자금이 부동산이 아닌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여건 조성도 시급하다. 정부는 올해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 혁파로 투자의 물길을 트겠다고 했지만, 민간기업들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자율주행, 원격의료, 공유 차량 등 신산업에서 규제를 극복하지 못한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올해 성장 목표 달성이 중요하겠지만 성공해도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밑돈다. 성장잠재력을 확충하지 못하면 장기적인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경제 활력을 떨어트리는 망국적 저출산 고령화와 고비용·저생산성의 경제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는 획기적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