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아우슈비츠 해방 75주년 기념식 참석한 고령 생존자 증언 조명
NYT "추모행사 참석 생존자 15년 사이 1천500명→200명으로 줄어"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누군가 역사를 두고 거짓말을 할 때 무관심하지 말아달라. 누군가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과거를 이용하려 할 때 무관심하지 말아달라. 그렇지 않으면 또다른 다른 아우슈비츠가 우리를 덮쳤도 놀라지 못할 것이다. "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18살 때 강제수용소로 끌려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고통을 겪은 마리안 투르스키(94)는 '십계명'에 하나의 항목을 추가할 수 있다면 "무관심하지 말라"를 넣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27일(현지시간)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아 '죽음의 문' 앞에 모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공유한 끔찍한 사연을 조명했다.
죄수 번호가 적힌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행사장을 찾은 생존자 200여명은 어쩌면 이번이 자신이 참석할 수 있는 마지막 추모행사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과거를 잊지 말아 달라고 연신 강조했다.
나치가 팔에 새긴 죄수 번호를 문지르던 배트-셰바 다간(95)은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표현할 단어는 사전에 없다"며 아우슈비츠에 잡혀 왔을 때 몽땅 잘려 나간 자신의 머리카락이 침대 매트리스 속을 채우는 데 쓰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전했다.
폴란드의 한 마을에서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어린이 5천명 중 가장 어린 생존자였던 토바 프리드먼은 "내가 아는 많은 아이가 오븐에 들어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오늘 이곳에 있지 않은 모든 아이를 대표해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히르시 리트마노비치는 악명 높은 나치 친위대장교이자 의사였던 요제프 멩겔레가 자신을 B형 간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던 일화를 소개하며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했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부모님 그리고 4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아우슈비츠에 잡혀 왔던 벤 레서(92)는 가스실에 보내 죽이느냐, 일꾼으로 쓰느냐를 결정한 멩겔레가 자신에게 "5㎞를 달릴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해 바로 죽음을 맞이했던 다른 형제·자매들과 달리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대부분은 80대 또는 90대의 고령이었으며 가족 또는 친구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가냘픈 지팡이에 의지해야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 독일이 전 세계에서 학살한 유대인은 총 600만명에 달하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한 곳에서만 무려 1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가디언은 소개했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에서 발견된 생존자는 7천여명이었으나 75년이 지난 이날 추모행사에 참석한 생존자는 200명 남짓. 15년 전만 해도 추모행사에 참석한 생존자는 1천500여명이었으나 빠른 속도로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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