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유령도시 방불 베이징 한인촌, 인적 끊기고 마트만 북적

입력 2020-01-28 16:11  

[르포] 유령도시 방불 베이징 한인촌, 인적 끊기고 마트만 북적
식료품 배달 앱 매진 행렬…일부 마트 식료품 코너 북새통
베이징, 일부 동네 봉쇄식 관리…아파트 입구서도 발열 체크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 "마스크랑 손 소독제는 벌써 떨어졌고, 라면도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이 나갑니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우한 폐렴'이 전역으로 확산한 가운데 28일 교민 2만여명이 모여 사는 베이징(北京) 왕징(望京) 한인촌 한국 식품 마트의 한 직원은 텅 빈 라면 진열대에 물건을 채우며 이 같이 말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장을 보던 한 손님은 기자에게 "그제(26일)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 연장 발표가 난 뒤로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할지 몰라 장을 보러 왔다"면서 "밖에 돌아다니는 게 불안하긴 한데 어제부터는 배달도 잘 안 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마트에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손님은 "여기서 좀 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데 동네 마트에 우유와 생수가 다 떨어졌다고 해서 혹시 몰라 물하고 라면 같은 것을 사려고 왔다"면서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처럼 식료품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 마트 또 다른 직원은 "원래 춘제 기간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편인데 올해는 예년에 비하면 3배 정도 물건이 빨리 나가고 있다"면서 "라면 같은 경우는 오전에 물건을 채우기 무섭게 팔려나간다"고 설명했다.
한국 마트 외에도 육류 등 신선식품을 파는 중국 온라인 유통업체 허마센성(盒馬鮮生)도 배달이 밀려 온라인 판매를 중단했다.
특히 약국에는 의료용 마스크가 동나고, 마트 내 손 소독제 등 보건 용품 코너가 텅텅 비었다.


북적이는 마트와 달리 한인촌 거리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왕징 지하철역에는 마스크를 낀 채 체온계를 들고선 승무원들이 드문드문 개찰구로 들어서는 승객들의 체온을 꼼꼼하게 측정했다.
역 밖으로 나와도 한적한 도로에 이따금 한두 대의 차량이 지날 뿐 인적이 거의 없었다.
한국 식당들이 모여 있는 한국성(城)에도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점심 장사가 한창인 낮 12시에도 대부분 식당에는 한 테이블도 손님이 차지 않았다.
한인촌뿐 아니라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한 궈마오(國貿) 인근과 창안다제(長安大街)에도 평소와 달리 왕복 8차선 도로에 지나는 차량이 극히 드물었다.
베이징역에서는 베이징에 도착하는 승객 전원을 대상으로 체온을 측정했다. 평소라면 사람으로 가득 찼어야 할 역 대합실은 절반도 채 차지 않았다.


우한을 비롯한 전국에서 들려오는 도시 봉쇄 소식에 베이징을 오가는 시외버스까지 중단되면서 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베이징 일부 지역은 우한 폐렴 환자가 발생해 베이징 당국으로부터 봉쇄된 채 관리에 들어갔다.
베이징시 당국은 식자재를 농수산물 유통 업체를 통해 차량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이런 지역은 베이위안(北苑), 퉁저우(通州) 등 여러 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원우 중국 한인회 회장은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이 규모가 있는 도시는 조금 덜하지만, 저장(浙江)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의료용품이 부족해 직접 집에서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있는 실정"이라며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 사람이 현지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교민들이 많아 중국을 떠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중국 내에서 마스크 등 방역용품에 대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면서 교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최대한 빨리 구호 물품 등을 지원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chin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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