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표 가수 퀸·왬 히트곡 떼창에 "자유" 연호…잔류 지지 시위도
"EU 굴레 벗어나면 더 번창"…"가슴이 찢어진다, 영국은 어느 때보다 친구 필요"
갈등·분열 치유는 '아직'…"혼란을 끝내고 싶다"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예정된 31일(현지시간) 저녁.
런던 웨스트민스터궁에 자리한 의사당 옆 의회광장에는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초저녁부터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떤 이의 손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이 들려있었고, 어떤 이는 맥주를 들고 마치 축제를 즐기러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브렉시트를 한 시간 앞둔 오후 10시. 의회광장 주변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인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은 구경거리를 만난 전 세계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후 10시 30분. 브렉시트 지지 캠페인인 '탈퇴는 탈퇴다'(Leave Means Leave) 측이 의회광장 한쪽에 마련한 무대에 오른 공연단이 흥겨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퀸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 비틀스의 '헤이 쥬드'(Hey Jude), '왬(Wham)의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 고'(Wake Me Up Before You Go Go) 등 영국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의 히트곡이 나오자 수많은 관람객이 '떼창'을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어 영국의 대표적인 극우정치인이자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EU 탈퇴를 소리높여 외쳤던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가 무대 위에 올랐다.
패라지 대표가 "우리가 해냈다"(We did)라고 말하자 수많은 영국인이 "자유(freedom), 자유"를 외쳤다.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프랑스 국기를 들고 지나가자 주변에 있던 영국인들이 "프랑스도 프렉시트를"(Come on, France. Frexit)라고 말했고, 이에 해당 남성도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10시 59분. 브렉시트를 1분 가량 앞두고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10시 59분 30초부터 무대 위 대형화면에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수만명이 "10, 9, 8, 7, …, 3, 2, 1, 브렉시트"를 외쳤다. 영국이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에 회원국 지위를 벗어던지는 순간이었다.
◇ "브렉시트 실행해 안도"…"가슴 찢어진다" 엇갈린 반응
이날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도 의회광장부터 총리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주변 정부청사, 트래펄가 광장에 이르기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학수고대하던 EU 탈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년 7개월 만에 마침내 브렉시트가 단행된 것을 환영하면서, EU를 벗어난 영국의 장래가 매우 밝을 것으로 전망했다.
잉글랜드 북부 출신으로, 브렉시트를 축하하기 위해 이틀 일정으로 런던을 찾았다는 20대 청년 크리스 프랭스씨는 소감을 묻자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지를 묻자 "EU라는 굴레를 벗어나 영국이 독자적으로 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더 번창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대상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개국을 꼽았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뒤 전환(이행)기간이 끝나는 올해 말 이후로 영국 국민은 EU에서 제한 없이 거주하거나 일할 자격을 잃게 된다.
이에 대해 프랭스씨는 "물론 아쉽지만 그것이 브렉시트를 하는 대가라면 내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남부 사우샘프턴 출신인 중년 여성 헬레나씨는 "마침내 우리는 떠난다. 브렉시트를 하게 돼 매우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드디어 자주권을 회복해 법과 각종 규정에 있어서 독자성을 회복하게 됐다"며 브렉시트 찬성 이유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브렉시트로 인해 EU와의 교역에 장애가 생기면 식료품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 가격이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헬레나씨는 "단기적으로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많은 나라에 가서 독자적으로 물건을 수입할 수 있고, 우리 물건을 수출할 수 있다. 영국은 강한 경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이날 오후 3시께 찾은 의회광장에는 브렉시트 지지자뿐 아니라 EU 잔류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의사당과 의회광장 사이에 난 도로 하나를 두고 대치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경찰이 이들을 막아선 가운데 브렉시트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은 서로를 향해 고성을 지르며 비난했다.
브렉시트 당일까지도 영국 사회는 여전히 혼란과 분열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런던에 거주하는 터너씨는 브렉시트 반대론자다. 그는 소감을 묻자 "오늘은 이름뿐인 브렉시트다. 연말까지는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고 애써 평가 절하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가슴은 찢어진다"고 말했다.
터너씨는 브렉시트를 막지는 못했지만, 영국이 결국은 EU에 다시 돌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당장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브렉시트 이후의 현실을 점점 깨달으면서 다시 EU에 속하기를 원할 것이다. 수년 뒤에는 이를 뒤집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성은 "우리는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브렉시트 반대'를 외쳤지만, 이제 'EU 재가입'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길 건너편에 있는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찾아가 EU 재가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잉글랜드 남부에서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런던을 찾았다는 중년 여성 미카엘라씨는 "현재와 같은 EU 형태 하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의 친구는 "내 살아 생전에 EU에 다시 가입하는 것은 보기 싫다"고 거들었다.
미카엘라씨는 전환기간으로 설정된 연말까지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지를 묻자 "그때까지 합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떤가. 나쁜 합의 보다는 차라리 '노 딜'이 낫다"며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 평범한 시민들, 정치성향 관계없이 브렉시트 피로감 호소
브렉시트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의견을 갖고 의회광장을 찾은 이들이 아닌, 평범한 영국 국민들이 브렉시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궁금했다.
이날 저녁 런던 남서부 톨워스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만나 영국인들은 브렉시트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들은 브렉시트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이제는 혼란을 끝내기를 원한다고 한목소리로 얘기했다.
인도계 영국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VJ라는 소개한 중년 남성은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와 관련한 혼란에 지쳐있다. 브렉시트 찬성 여부를 떠나서 대부분은 이제 논란을 끝내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그는 당장 영국이 EU를 떠나는 데 따른 각종 시행착오가 따르겠지만 영국이 결국은 독립국으로 살아가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5년, 10년이 지나면 영국 경제가 제자리를 찾아서 EU에 있는 것보다 더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잉글랜드 북부 리버풀 출신으로 에버튼 FC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존 타일러씨는 자신이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자였지만 최근 총선에서는 보수당에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그는 "내 고향인 리버풀은 노동당 지지율이 매우 높은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도 그렇지만 고향의 많은 이들이 보수당에 표를 던졌다"고 전했다.
타일러씨는 보수당에 표를 던진 이유에 대해 "(보수당 대표인) 보리스 존슨 총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노동당 대표인) 제러미 코빈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렉시트 완수'(Get Brexit done)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존슨 총리와 달리 코빈 대표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를 개최해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다시 한번 국민에게 묻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투표가 열리면 자신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타일러씨는 "노동당을 지지해왔지만, 브렉시트와 관련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실망스럽기만 했다"면서 "브렉시트 혼란을 끝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보수당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열린 총선에서 보수당은 '붉은 벽'(red wall)으로 불리면서 전통적인 노동당의 강세 지역이었던 미들랜즈와 잉글랜드 북부에서 50석 이상을 확보, 1987년 이후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인근 대형마트에서 만난 60대 여성 클레어씨는 "이 나라를 생각하면 슬프다. 영국은 불필요한 브렉시트를 결정했다"면서 "얼마 전 모든 절차가 완료되고 마침내 브렉시트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첫째 아들의 여자친구가 프랑스인이라며 "내 아들과 그 아이한테 어른으로서 미안하다. 혹시나 아들과 여자친구가 브렉시트로 인한 불편함 때문에 헤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클레어씨는 "지금 영국 병원의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유럽 출신이다"라면서 "단기간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이들이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영국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 의료 시스템이 이를 어떻게 감당할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글로벌한 이슈가 많은 상황에서 각 나라는 서로 협력해야 할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혼자가 되려 한다. 그 언제보다 친구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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