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조치, 이례적 인사…정치 개입 오점" 평가
아베 정권 핵심정책 복합리조트 비리 수사 등 영향 주목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과 매우 가까운 검사장의 정년을 연장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결정이어서 뒷말을 낳고 있다.
논란의 당사자는 일본 검찰의 2인자인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이다.
1957년 2월 8일생인 구로카와 검사장은 검찰관(검사에 해당)의 정년을 만 63세로 정한 일본 검찰청법에 따라 이달 7일 정년퇴직을 해야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달 31일 각의에서 그의 복무 기간을 올해 8월 7일까지 6개월 연장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1일 전했다.
정년 연장에 대해 '전대미문의 조치'(교도통신), '처음으로 보인다'(요미우리신문), '이례적 인사'(아사히신문)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년 연장에 대해 모리 마사코(森雅子) 법상(법무부 장관에 해당)은 "업무 수행상 필요성에 바탕을 두고 계속 근무시킨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의 퇴직으로 공무에 현저한 지장이 생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근무 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한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조치라는 것이다.
정년이 연장된 구로카와 검사장은 차기 '검사총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사총장은 한국으로 치면 검찰총장에 해당한다.
이나다 노부오(稻田伸夫) 검사총장이 올해 8월에 취임 2년을 채우고 관례대로 물러나면 정년이 연장된 구로카와 검사장을 검사총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검사총장의 정년은 만 65세이므로 구로카와 검사장이 연장된 정년인 올해 8월 7일까지 검사총장에 임명되면 검사로서의 직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애초에는 이나다 검사총장의 후임으로 하야시 마코토(林眞琴) 나고야고검 검사장이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갑자기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을 연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정년 연장이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이례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로카와의 그간 행보로 인해 정년 연장이 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수사통이라기보다는 법무 관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법무성 관방장으로 5년간 일하며 공모죄 등을 입법하기 위해 정치인을 설득하는 작업을 했고 법무성 사무차관도 지냈다.
교도통신은 구로카와가 법무·검찰 인사 중 손꼽히는 정계 통이며 아베 정권과의 친밀감이 역대 법무 관료 중에서도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구로카와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 아베 정권 핵심 인사로부터 총애받는다고 평가했다.
결국 정계 인맥이 두텁고 아베 정권과 매우 가까운 검사장을 차기 검사총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정년을 연장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법조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검사장을 지낸 한 인사는 "이것이 허용된다면 뭐든지 가능해진다"고 지적했으며 검사총장을 지낸 다른 인물은 "총리관저의 주도권이 지나치게 두드러진다. 무리한 인사는 좋지 않다"고 쓴소리를 했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치와의 거리가 중요한 법무·검찰에 정치의 개입을 부른 오점"이라고 혹평했다.
교도통신은 검사의 정년을 국가공무원법이 아닌 검찰청법으로 정한 것은 검사의 '직무와 책임의 특수성'을 고려한 일종의 '특례'인데 일본 정부가 구로카와의 정년을 연장하기 위해 다시 국가공무원법으로 돌아가 근거를 찾은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남는다고 논평했다.
구로카와의 정년 연장이 일본 검찰이 수사 중인 현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
그는 도쿄고검 검사장으로서 현재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를 지휘하는 입장에 있으며 검사총장이 되면 일본 검찰의 수장으로서 모든 검찰청 직원을 지휘·감독하게 된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日産)자동차 회장을 유가증권 보고서 허위기재 혐의 등으로 기소했으며 곤 전 회장의 도주 혐의 등을 수사 중이다.
또 아베 정권의 핵심 정책인 복합리조트(IR) 사업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아키모토 쓰카사(秋元司) 중의원 의원을 둘러싼 비리도 수사 중이다.
각료 경험이 있는 자민당의 한 중견 의원은 "특수부를 책임지고 있는 법부·검찰 수장 인사는 성역인데 여기까지 관저가 개입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법무·검찰 내부에서는 "누가 총장이 되든 큰 영향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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