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매체 CNN·NYT 등 통계·맥락 설명하며 진위 판정
에너지 패권 과장…호황 신기록·고용창출 주장에 허위수치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도 치적을 인상적으로 소개하는 데 공을 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과장된 표현이나 수치, 맥락이 없는 단편적인 사실로 대중에 호소력을 발휘해온 만큼 미국 매체들은 이번에도 발언의 사실관계를 검증하려고 애를 썼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CNN방송 등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매체들은 이번 연설에 과장, 거짓말, 그릇된 결론을 유도하는 주장, 맥락이 필요한 내용 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들 매체가 논란이 있다고 지목한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찬이 집중된 경제 분야에서 많이 나왔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패권에 대한 강조를 가장 먼저 검증대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완화 캠페인 덕분에 미국은 세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천연가스 등의 최대 생산국이 된 것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라고 이들 매체는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은 2009년 러시아를 제치고 천연가스 최대 생산국,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석유탄화수소 최대생산국에 각각 올라섰다.
이 지위를 유지하던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원유 최대생산국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에너지 패권에 대한 자찬으로 해석되는 이 발언은 의미가 있지만 논란의 여지도 있는 말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치적으로 강조한 일자리 창출 규모는 거짓 판정을 받았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할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자동차 산업에서 고소득 신규 고용이 10만개 가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치는 정부기관인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추산인 5년간 7만6천개보다 많고 중립적인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의 추산 2만8천개의 3배를 넘는 만큼 '과장'으로 지적됐다.
NYT는 USMCA가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무역장벽을 높여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늘릴 수 있지만 자동차 가격을 높여 소비와 생산을 위축시킴으로써 일자리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강조하며 제시한 신규공장 규모도 거짓에 가까운 것으로 판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의 힘을 복원하고 있다"며 "전임 두 행정부에서 공장 6만개를 잃었지만 내 행정부에서 1만2천개를 새로 얻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분기별 고용·임금 통계(QCEW)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추가된 공장은 1만1천개 미만이고 그 가운데 8천개는 고용이 5명 이하일 정도다.
미국 경제가 역대 최고를 달리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거짓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았다.
NYT는 미국 경기 확장기가 역대 최장인 11년째로 접어들었고 실업률이 반세기 만의 최저인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이나 경제성장률을 보면 역대 최고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보다 높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경제 회복을 위해 단행한 규제완화와 세금감면의 효과도 거짓 목록에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순간부터 나는 일자리를 없애는 규제를 기록적인 규모로 없애고 역사적으로 신기록을 수립하는 감세를 시행해 미국 경제의 회생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규모는 10년간 2조 달러 정도로, 이는 미국 재무부 자료를 토대로 분석할 때 신기록과 거리가 먼 역대 8위 정도라고 지적했다.
취임 후 미국 주가가 70% 올랐다는 발언도 거짓이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과 다우존스 지수의 평균 상승치는 60% 정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남미 이민행렬을 차단할 국경장벽의 건립 규모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으로 분류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길고 높고 매우 튼튼한 장벽을 100마일 넘게 건립했다"고 말했다.
CNN방송은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115마일에 달하는 '새 국경 시스템'이 기존 장벽을 보수하는 방식으로 수리된 것이지 새 장벽이 건립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날 국정연설에 초대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합법적 대통령으로 소개한 부분도 논란에 휘말렸다.
NYT는 미국을 비롯한 주로 서방의 50개국이 과이도 의장을 대통령으로 승인했으나 유엔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이란은 그의 정적인 니콜라스 마두로를 공식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맹국들과 갈등을 빚는 방위비 증액 압박과 그 효과에 대한 주장에도 진위 논란이 뒤따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로부터 4천억 달러 이상을 걷었고 최소 의무기준을 맞춘 동맹국들의 수가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4천억 달러는 나토 동맹국들이 2024년까지 늘릴 것으로 추산되는 국방지출 총합이다. 작년 11월 현재 미국을 비롯한 9개국이 나토의 방위비 지출 목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예산의 비율 2%를 달성했는데 그 수는 2016년 5개국에서 늘어난 것이다.
NYT는 틀린 수치뿐만 아니라 나토 동맹국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2014년에 이미 '2024년까지 2% 기준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점도 허위주장의 근거로 지적했다.
한편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반박에서도 과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반박 연설에서 "미국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는다"며 "임금이 정체됐으나 최고경영자(CEO)들의 급여는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YT는 기간에 따라 변동폭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맥락이 필요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20년 동안 보통 근로자들의 임금은 정체됐으나 가계소득 중간값은 2017년 1.4%, 2018년 0.9%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CEO 급여도 1979년보다는 10배 가까이 오르긴 했으나, 2018년에는 2007년보다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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