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BBC 재정압박 착수…"주류언론 타깃으로 삼았다"
'여론장악 시도·언론자유 질식' 우려 섞인 시선 봇물 터지듯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언론과 전쟁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주요 타깃은 공영방송 BBC이지만 자신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정책을 줄기차게 지지했던 매체들도 대상으로 삼아 반발을 부르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지난주 역사적 브렉시트를 기념하는 노변정담(fireside chat) 자리에 BBC 카메라 팀 대신 총리실 자체 영상 팀이 촬영토록 했다. 이에 BBC도 그날 저녁 총리 발언에 대한 방영을 거부했다.
이러한 장면은 존슨 총리와 BBC 간의 치고받기식 갈등의 한 단면이다.
존슨 총리 내각의 장관들은 BBC의 인기 라디오 쇼 출연을 거부하고 BBC 수신료 미납자들에 대한 기소를 중단하겠다는 제안까지 내놓는 등 경제적 위협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한때 기자였던 존슨 총리와 영국언론 간에 깊어지는 적대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NYT는 풀이했다.
존슨 총리의 이 같은 모습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출입기자들 간 충돌을 떠올릴 수 있다.
존슨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거친 언사를 쓰진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진보 성향이라는 CNN과 MSNBC 방송 등을 타깃으로 삼는 것과 달리 존슨 총리는 영국에서 존중받는 공영방송인 BBC를 공격하고 있다.
지난 3일 영국 총리관저 측이 예정된 기자회견에서 특정 언론사를 배제하자 BBC,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등 다른 매체의 출입기자들도 이에 항의해 회견장을 박차고 나왔다.
일간 데일리메일은 자사 기자도 회견을 거부한 것과 관련 "본지는 총리가 달성하려는 모든 것을 열렬히 지지하지만 무비판적인 친구일 수 없다"면서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은 그의 개방적 메시지를 우습게 만드는 꼴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반발이 거세자 존슨 총리는 5일 좀 더 유화적인 톤으로 "나는 기자다. 나는 언론을 사랑한다"고 진화에 나섰다. 존슨 총리는 더타임스, 텔레그래프 등 영국 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주간지 스펙테이터 편집장을 지냈다.
하지만 그보다 수 시간 앞서 존슨 내각은 BBC 수신료 미납자 기소를 중단하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 관리들은 시청료와 비슷한 성격의 다른 고지서에 대한 미납자에 대해서 형사가 아닌 민사로 다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신료는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서비스와 TV서비스 구독료 시대에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BBC 시청료는 연간 154파운드(약 23만6천원)로 미납자 가운데는 노년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정부가 BBC의 뉴스 보도행태를 싫어하기 때문에 수신료 같은 자금 지원을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2015년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의 보수당 정부 때도 수신료 미납을 기소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BBC가 입을 손실은 연간 최고 4억파운드(약 6천142억원)로 그때의 2배 수준이라고 분석가들은 추산했다. 이는 BBC 예산의 10% 규모로 직원과 프로그램 감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BBC는 지난달 재정 감소에 대비해 뉴스 부문에서 450명가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존슨 총리와 비(非)방송 매체와 관계도 급속히 틀어지고 있다. 지난 3일 기자들의 회견 거부는 2주 새 두 번이나 정부 관리들이 브리핑 참석 기자들을 차별적으로 고른 데 대한 항의 차원이었다.
기자들은 총리의 막후 실세인 도미닉 커밍스 수석 보좌관이 의회 회기 중 하루 두차례 하는 정례 브리핑도 보류하려는 것을 더 크게 걱정하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존슨 내각이 주류 언론을 무시하려는 더 장기적 야심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직접 퍼뜨리고 기자들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한다.
노동당 등 야당도 "총리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술을 모방해 우리의 자유 언론을 질식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미라 셀바 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펠로십 프로그램 국장은 "이번 사안은 영국 정치 논쟁의 선들을 다시 그리는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면서 "정부가 이슈와 토론을 틀어쥐려고 한다"고 말했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