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반지하가 한국 빈부격차 상징? "확대해석 경계해야"

입력 2020-02-11 15:57   수정 2020-02-11 16:18

'기생충' 반지하가 한국 빈부격차 상징? "확대해석 경계해야"
5년전 통계로 36만3천가구 거주…제도·주거문화 변화로 사라지는 중
1970년대 산업화·도시화로 급속 확산…'방공호' 기능설은 불확실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의 기염을 토하며 세계를 호령하자 영화의 배경이 된 반지하 주택 문화에 외신들이 새삼 주목하고 있다.
외신들은 한국의 반지하 문화를 빈부격차의 상징물로 평가하면서 북한과의 전쟁 위험 때문에 생긴 방공호에서 유래했다는 해석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반지하 주택은 과거 일시적으로 확산했으나 지금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주택 유형인 만큼, 이를 새삼 한국의 빈부격차를 드러내는 증거인 양 확대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전체 1천911만1천731가구 중에서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는 36만3천896가구(1.90%)였다. 5년마다 진행되는 인구주택총조사의 최신 통계는 올해 나온다.

반(半)지하는 건축법령에도 없는 개념이지만 1970년대 이후 산업화와 함께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급속히 유입되면서 자생적으로 확산한 주거 형태다.
건축법에서 지하층이 '건축물의 바닥이 지표면 아래에 있는 층으로서 바닥에서 지표면까지 평균 높이가 해당 층 높이의 2분의 1 이상인 것'으로 정의됨에 따라 지상층은 아니지만 완전한 지하층도 아닌 곳이 '반지하'가 된 셈이다.
현실적으로 지하 거주자로 분류된 36만3천여 가구의 대부분이 반지하에서 거주한 것으로 추산된다.
반지하 거주 가구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의 비율은 2005년 3.69%(58만6천649가구/1천588만7천128가구)에서 2010년 2.98%(51만7천689가구/1천733만9천422가구)에 이어 2015년에는 1%대로 내려가는 등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인다.
반지하는 1970년대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가 1970년 건축법을 개정하면서 일정 규모나 용도 이상 건축물을 지을 때 지하층을 짓도록 의무화하면서 다세대 주택 등에 지하층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공습에 대비한 방공호 기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지하층을 만들도록 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후 산업화로 서울 등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주택 부족 현상이 일어나게 되자 반지하층이 거주 공간으로 바뀌면서 반지하는 급속도로 확산했다.
그러다 정부가 1984년 다시 건축법을 개정해 지하층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반지하 주택이 서민 주거문화의 한 종류로 자리 잡았다.
이때 지하층의 요건이 지하층 바닥부터 지표면까지 높이를 천정까지 높이의 3분의 2 이상에서 2분의 1로 완화됐다.
당시 정부는 법 개정 이유로 '지하층에 사람이 거주하는 경우도 있어 그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현재로선 다세대 등 주택용 건물에 반지하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다. 2003년 주차장법이 개정되면서 주택에 필수 주차공간을 확보하게 하는 등 건축 관련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주택 밀집 지역에 반지하보다는 필로티 건축물이 급속히 늘어났다.

반지하가 줄어든 것은 규제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반지하가 많은 노후 주택지역이 재개발 등으로 꾸준히 개선됐고 주거수준이 올라가면서 반지하 수요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지하는 이렇듯 과거 도시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퍼졌지만 이미 제도 개선과 주거문화 변화로 사라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외신들이 기생충의 대성공을 계기로 한국의 반지하 문화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빈부격차 문제를 방증하는 소재로 부각시키고 있다.
영국 공영 BBC와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 반지하 가구 르포 기사를 통해 '반지하는 방공호에서 유래했다'라고 단정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사 1970년 건축법을 개정한 정부의 의도에 그런 측면이 반영됐다고 해도 이미 50년이 흘렀고, 이후 이곳에 깃든 이들 중 자신이 방공호에 살았다고 여긴 이가 몇 명이 될지 의문이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영국 시골 소년의 성장기를 담아 크게 흥행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1년)에선 주인공의 아버지가 땔감을 구하지 못해 집에 있던 피아노를 쪼개서 장작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형편이 여의치 않지만 아들의 꿈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장면으로 해석되지만, 이를 두고 당시 영국 주요 언론은 '왜 우리 영화에서 영국이 이렇게 가난하게 비쳐야 하느냐'며 한탄한 바 있다.

그러나 영국이 실제로 가난하다고 여기는 이는 별로 없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 변세일 박사는 "반지하는 1980년대에 많이 지어졌지만 어차피 규제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재개발 등 순차를 밟아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 반지하가 현상적으로 남아 있고 집값이 싸다 보니 일부 젊은층이 일시 거주하는 형태가 있겠지만, 주거 실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에 이를 두고 빈부격차가 심각한 증거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지하 거주자가 좀 더 좋은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반지하에 쏠린 관심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사실 어차피 반지하 주택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기에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은 반지하 환경개선 자체보다는 이곳 거주자의 주거공간 수준을 상향하는 데 맞춰져 있다.
행복주택과 청년주택 등 청년층을 위한 공공임대를 확대하고 신혼부부희망타운 등 신혼부부 특화단지를 만들어 공급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이한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반지하는 최근 수년 사이 옥탑방, 고시원과 함께 '지옥고'로 불리며 청년 주거 문제로 떠오른 주제"라며 "영화가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반지하보다는 이보다 주거 환경이 훨씬 열악한 쪽방촌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非) 주택 거주자에 대한 주거 지원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토부가 2018년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를 통해 파악한 비주택 거주자는 수도권 19만가구를 포함해 전국 37만가구로 추산된다.

기준 시점이 일치하진 않지만, 2015년 기준 반지하 거주자 36만3천여가구보다 많다.
정부가 주택이 아닌 비주택 거주자에 대한 복지 강화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도 작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정부는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복합 개발 등 쪽방촌 주민 이주 사업을 통해 쪽방 주민들을 새로운 공공임대로 이주시키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 중이다.
bana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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