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코로나19 통계기준 바꾸고 지도부 경질 '대혼란'(종합)

입력 2020-02-13 16:03   수정 2020-02-13 17:34

중국, 코로나19 통계기준 바꾸고 지도부 경질 '대혼란'(종합)
핵산검출 없어도 CT촬영으로 확진 판단…진단 기준 완화로 급증
코로나19 피해 축소론 속 '발원지' 후베이·우한 당서기 동시 경질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김진방 특파원 =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통계 기준을 갑자기 변경해 확진 및 사망자 수치가 급증하고 피해가 가장 심한 후베이(湖北)성과 우한(武漢)의 당서기가 동시에 경질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확진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날 후베이와 우한 최고위직이 물러난 것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들 지도부는 코로나19 초기 대응 미흡으로 중국 전역에 대규모 확산을 야기했음에도 피해 상황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을 대내외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방제의 가장 기본이 되는 환자 통계 기준을 갑자기 바꿈에 따라 향후 중국 발표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보건당국은 13일 오전 후베이성의 코로나19 발생 현황을 발표하면서 '임상진단병례'라는 항목을 만들어 확진 범위에 새로 넣었다.
이에 따라 후베이에서는 지난 12일 하루 새 확진 환자와 사망자가 각각 1만4천840명, 242명으로 대폭 늘었다.

특히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우한은 확진 환자가 1만3천436명, 사망자가 216명으로, 새로 증가한 수치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중국 보건당국이 새롭게 적용한 임상진단병례는 기존 검사 방식인 핵산 검출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더라도 발열,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가 컴퓨터단층촬영(CT) 촬영 결과 폐렴 증상이 있을 경우 임상 의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급격한 수치의 증가는 중국 보건당국이 기존 사망자와 의심 환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추산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기존의 확진 범위를 넓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퉁차오후이(童朝暉) 베이징차오양병원 부원장은 관영 중앙(CC)TV와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폐렴을 진단할 때 병원균을 검출을 통해 병인학적 진단을 하는 경우는 20∼30%에 불과하고, 70∼80%는 임상 진단을 통해 판단한다"면서 "이전 기준에 따르면 임상진단병례 환자는 의심 환자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후베이 당국은 확진 환자 기준 변경에 대해 "다른 지역의 확진 환자 기준과 후베이 지역의 기준을 일치시키기 위해 의심 환자에 대해 일일이 조사를 거쳐 통계 수치를 수정했다"면서 "이는 의심환자들이 확진자와 같이 조기에 치료를 받아 완치율을 높이도록 임상 진단 기준을 새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베이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다른 지역은 이미 임상진단을 통한 확진 판정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런 주장의 정확한 진위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보건당국이 코로나19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 확진 환자 기준을 변경한 것은 통계 수치와 현실에서 체감하는 환자 수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실질적 통계'에 가깝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의 통계에 대한 불신은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 사망자나 확진자 수치에 대한 '은폐론'이나 '축소론' 형식으로 계속 제기돼 왔다.
홍콩 등 중화권 매체들은 그간 우한지역 병원에서 늘어나는 환자와 사망자 수와 비교해 정부의 공식 통계 수치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도해 왔다.
환자가 집중된 우한지역에서는 치료시설 부족으로 폐렴 환자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지정 병원을 찾았다가 수용되지 못하고 다른 의료시설로 옮기거나 자가 치료를 하는 상당수가 공식 통계에서 누락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한 의료인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우한 현지에 파견된 동료 의사에 따르면, 하루에 진료를 보는 환자 중 60∼70%가 확진 판정을 받고, 사망자도 매일 크게 늘고 있다"면서 "정부의 공식 통계에 현장 상황이 얼마나 제대로 반영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중국 당국이 이번에 통계 수치 기준을 변경한 것은 그간 제기된 환자 수치 축소·은폐 의혹에 대한 부담을 한 번에 털어내려는 의도도 담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후베이성의 코로나19 통계 기준이 변경된 가운데 이날 후베이성과 우한시 당서기의 동시 경질 소식도 들려왔다.
장차오량(蔣超良) 후베이성 당서기가 물러나고 후임에 잉융(應勇) 상하이 시장이 임명됐다. 마궈창(馬國强) 우한시 당서기도 물러나고 왕중린(王忠林) 지난(濟南) 시장이 자리를 넘겨받았다.
중국 지도부가 후베이성과 우한시의 최고위직을 한꺼번에 교체한 것은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정보 은폐 등으로 들끓는 민심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후베이성의 코로나19 통계 기준을 갑자기 바꾸고 같은날 후베이와 우한 최고위직을 동시 경질한 것은 우연으로 보기엔 너무 공교롭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기준 변경 조치가 전염의 급속 확산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청광(曾光) 중국질병방지센터 전염병 수석과학자는 "코로나19 환자의 양성 판정은 상당히 느리게 나온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이로 인해 쉽게 감염이 확산하는데 이번 진단 기준 변경은 감염 통로 누수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양성 판정 전에 감염이 일어난다면 중국 당국의 이번 조치는 사람 간 전염에 대한 초기대응 미흡을 뒤늦게 시정한데 이은 또 하나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될 공산이 크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확진 판단 기준을 변경함으로써 중국 보건당국에 대한 비난도 다시 거세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president21@yna.co.kr chin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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