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산업 전반에서 혼란 불가피"…정부 "일단 법 시행후 개선 검토"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부가 건설업 부실벌점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건설업계가 아파트 선분양이 중단될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 주택공급규칙상 부실벌점이 많으면 아파트 선분양이 제한되는데, 이 법안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시공능력평가 상위 20개 업체 가운데 70% 이상이 선분양을 못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0일 부실벌점 산정방식을 전면 개편하는 내용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부실벌점은 건설사의 사업관리나 설계, 용역 과정에서 부실공사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부과하는 벌점으로 점수가 쌓이면 입찰 심사나 사업에서 불이익이 주어진다.
개정안에서는 부실벌점 산정 방식을 현행 평균(현장별 총 벌점을 현장 개수로 나누는 것) 방식에서 합산 방식으로 바꾸고, 공동도급(컨소시엄)의 벌점을 기존 출자 비율에 따른 개별 부과에서 컨소시엄 대표사에 일괄 부과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예를 들어 한 건설사가 총 100개의 현장에서 콘크리트 재료관리 소홀, 배수 상태 불량 등의 이유로 3점의 벌점을 받았다면 현재는 이를 현장 개수로 나눠 벌점이 0.03점에 그치지만 앞으로는 100배인 3점으로 산정된다.
종전에는 사업장이 많으면 평균이 낮아져 유리했지만, 앞으로는 사업장이 많을수록 불리해지는 것이다.
벌점이 쌓이면 일단 건설사들은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 공공공사 사전입찰 자격심사(PQ)에서 감점이 생기고, 벌점 규모에 따라 최대 2년간 입찰 참가도 제한된다.
건설업계의 도급순위 서열을 따지는 시공능력평가액도 감액된다.
건설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벌점 누적에 따른 아파트 선분양 제한 조치다.
정부는 지난 2018년 9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부실벌점에 따라 선분양 시기를 제한했다.
벌점이 1점 미만이면 문제가 없지만 벌점이 1∼3점 미만인 경우 전체 동 지상층 기준 각 층수 가운데 3분의 1 층수 골조공사 완료 후에 분양할 수 있고, 3∼5점 미만은 3분의 2 층수 골조공사 완료 후, 5∼10점 미만은 전체 동의 골조공사 후, 10점 이상은 사용검사(준공) 이후 분양이 가능하다.
그간 현행 방식의 벌점 제도로는 후분양 대상 기업이 많지 않아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개정안으로 제도가 바뀌면 반대로 대형 건설사의 상당수가 선분양에 문제가 생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공능력평가(이하 시평) 상위 20대 건설사의 벌점을 취합한 결과 앞으로 75%에 달하는 총 15개 업체가 선분양이 제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시평 상위 10위권 내 업체 가운데 8곳, 20위권 내 7개 건설사가 선분양을 못하게 된다. 연간 1만∼2만가구 이상씩 새 아파트를 분양하는 건설사들이 대거 후분양 위기에 몰린 셈이다.
이 가운데 3개 건설사는 합산 벌점이 높아 골조공사 또는 사용검사 이후에 분양이 가능해진다.
A건설사는 현재 평균 벌점이 0.18점인데 개정안으로는 합산 5점이 넘어 전체 동 골조공사가 끝나야만 아파트 분양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대형사는 현행 기준 벌점이 0.86점으로 선분양에 문제가 없었지만, 개정안으로는 벌점이 무려 10점에 달해 사용검사 이후에야 분양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건설협회는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앞으로 중대형 건설사의 부과 벌점이 평균 7.2배, 최대 30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택·건설산업 전반에 걸쳐 대혼란이 예상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입법 예고 게시판에는 현재 2천500여개가 넘는 반대 의견이 달려 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조만간 국회와 정부, 청와대 등에 개정안을 수정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법 개정 저지를 위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의 관계자는 "개정되는 벌점제는 단순 합산 형태여서 건설 현장이 많은 대형 건설사일수록 상당히 불리해진다"며 "주택 선분양이 제한되면 주택가격 상승기에 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건설사의 자금부담이 커져 정부가 추진하는 3기 신도시 등 주거복지로드맵 수행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는 컨소시엄 대표사에만 벌점을 부과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동 도급 공사는 참여사들이 각각의 출자 지분을 갖고 현장을 공동 운영하는 형태인데, 대표사에만 책임을 지우면 나머지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의 부실 공사를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중소 건설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다.
이미 지난해 부실벌점측정 대상이 중소 건설사의 영역인 소형 공사까지 확대된 가운데, 이번 벌점 제도 개편으로 정부 적격심사 대상 공사(국가 100억원, 지자체 300억원 미만 공사) 참여가 제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토부는 새로운 부실벌점 집행이 2년 뒤인 2022년 7월 이후인 만큼 일단 개정안대로 제도를 운용해보고, 필요하면 추가 조처를 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실벌점의 취지와 실효성 제고를 위해 법 개정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정부가 주택 분양 방식을 후분양으로 전환하는 것이 근본 목적은 아닌 만큼 제도를 운용하면서 후분양 벌점 기준을 손질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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