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간 피해아동 1만2천여명…가해 지도자 7천여명 퇴출
소송비용·배상금 감당 어려워…배상신탁 제시하는 등 회생 시도
(서울=연합뉴스) 김서영 기자 = 수백 건에 달하는 아동 성범죄 관련 소송에 휘말린 미국 보이스카우트연맹(BSA)이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110년 전통의 청소년 단체인 보이스카우트 연맹은 단체에 제기된 수많은 소송에 대한 변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18일(현지시간) 오전 델라웨어주 법원에 연방파산법 11조(챕터 11)에 의한 파산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미국 NBC방송 등 외신이 보도했다.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소송 비용과 피해 보상금으로 재정 상태가 열악해진 데다 신입회원 수까지 급감하자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보이스카우트 연맹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파산 신청이 "스카우트 활동 기간 중 피해를 본 이들에게 정당하게 배상하고, 향후 몇 년간 활동을 지속한다는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가진다"면서 '피해자 배상 신탁'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산법 11조에 따라 보호 신청을 한 기업은 즉각 청산을 피하고 파산법원의 감독하에 영업과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회생을 시도할 수 있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파산 신청서상의 부채총액은 5억~10억달러(약 6천억~1조원)이며, 보유한 자산 추정치는 10억~100억달러(약 1조~11조원)다.
다만 연맹 자산의 대부분은 중앙 본부가 아닌 전국의 각 지부가 독립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2018년도 납세자료에 따르면 중앙 본부는 2억4천만 달러(약 2천800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 신청에 따라 보이스카우트연맹을 상대로 제기된 모든 민사 소송은 중지된다.
로저 모스비 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장은 "모든 학대 피해자를 깊이 배려하고 있으며, 스카우트 기간 피해를 본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누군가 보이스카우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잘못이 없는 아동에게 해를 가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고 말했다.
성범죄 피해자인 전 보이스카우트 단원 케리 루이스를 대신해 연맹을 상대로 1천850만달러(약 200억원)의 보상금 지급 판결을 끌어낸 폴 몬스 변호사는 "개별 소송마다 피해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면서 보이스카우트 연맹의 파산 신청이 '비극'이라고 말했다.
몬스는 "어린 소년들은 순종하고, 스카우트를 지지하며, 명예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했지만, 단원들 다수가 이러한 맹세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분노했다"면서 "연맹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제 피해자들이 파산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300여명의 피해자를 대리하는 또 다른 변호사 마이클 파우는 연맹의 파산 신청으로 향후 재판 절차가 달라지면서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연맹의 무책임한 대응에 대해 직접 증언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팀 코스노프 변호사는 단체가 파산을 신청할 경우 피해 구제 신청에 대한 마감 기한이 생긴다면서 대부분 90일에서 9개월 사이지만, 1년까지 신청을 받을 수 있도록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코스노프 변호사는 파산 절차가 보이스카우트 연맹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는 불분명하지만, 현재까지 제기된 소송 전체를 고려하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코스노프는 최소한 연맹의 경영을 투명하게 정리하고, 연맹 지도부에 대한 높은 연봉 지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우는 이번 보이스카우트 내 성범죄 가해자의 수가 아동 성 학대 논란을 일으킨 가톨릭 사제의 수를 뛰어넘는다면서 미국 전역에서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앞서 작년 4월 보이스카우트 내에서 1944년부터 72년 동안 아동 단원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만연했다는 취지의 법정 증언이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증언에 따르면 7천명이 넘는 보이스카우트 지도자가 소속 아동 단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연맹에서 퇴출당했으며, 이들에 의해 피해를 본 아동 단원의 수도 1만2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연맹은 지난 8월 120여 건의 조직 내 아동 성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고 추가 가해자를 가려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들에게는 연맹의 파산 신청이 단체의 감독 아래에서 벌어진 학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CNN방송은 설명했다.
s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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