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테러 비상등…선동·난민사태 여파에 독일 먼저 당했다

입력 2020-02-21 11:13  

유럽 극우테러 비상등…선동·난민사태 여파에 독일 먼저 당했다
'이주정책 시험대' 독일 주목…"독립된 사건으로 보기 어려워"
"반이민정서·극우정파 득세에 '취약한 고리' 자생테러로 사회 개입"

(서울=연합뉴스) 김서영 기자 = 독일 총기난사 참변이 이주민들을 겨냥한 극우테러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
수년 전 난민사태 후 유럽 전역에 반이민 정서가 확산하고 기성 정치권이 극우 포퓰리스트 세력에 위협을 받는 가운데 불거진 이번 사건을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사건으로 국한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이번 사건을 비롯해 앞선 테러 사건 용의자 대부분이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과 같은 '취약한 고리'가 극우 세력의 선동에 자극을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해설기사를 통해 전날 테러가 발생한 독일 도시 하나우가 원래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자부심이 높은 지역이었다는 점을 들어 사회 분위기 급변을 강조했다.
용의자가 테러 표적으로 삼은 곳에 머물던 이들 대다수는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정착해 대를 이어 살아온 터키계 또는 쿠르드계 독일인들이던 만큼 이번 사건의 충격은 더 크다.
시리아 등지로부터 최근 독일로 건너온 중동 이민자들의 포용에 극렬히 반대해온 극우 세력의 폭력이 이전부터 독일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민자 출신 시민들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독일 국방장관은 "(테러 사건의) 배경이 더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며, 극우주의자의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하나우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집권 기독민주당 소속의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은 "이번 테러를 독립적인 사건이라고 봐선 안 된다"면서 "우리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다른 세력이 우리 사회에 주입한 (극우 인종차별주의라는) 독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 국가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비극적인 사태에 엄청난 슬픔과 독일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우리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극우 폭력의 배경에는 난민사태로 인한 실제 사회의 변화보다는 이주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온라인 선동, 극우 포퓰리스트 정파들의 선전전이 더 큰 요인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NYT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2015년 당시 시리아 난민이 대규모로 몰려들었을 때도 그 존재가 두드러지지 않았을 만큼 여러 서부 도시에 이미 대규모 이민자 집단이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사회는 이런 이유로 외국인이나 난민에 반대하는 극우 민족주의 정서를 동독에서 기인한 국지적 현상으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독일 정치권은 최근 극우성향의 AfD가 급속도로 대중적 기반을 넓히면서 주류 정치로까지 편입되는 추세인 터라 고민이 깊어진 상태다.
지난해 9월 열린 작센주(州)와 브란덴부르크주 지방선거에서는 전통적으로 다수당을 차지해온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이 제1당을 AfD에 내주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극우 세력의 약진 현상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중들의 우경화 때문에 중도 정치권이 급속도로 지지를 잃을 뿐만 아니라 정책을 급히 수정하는 현상까지 목격된다.
시사지 디 애틀랜틱은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은 중도좌파, 중도우파 정당이 극우 세력의 부상을 막기 위해 이민자 문제와 같은 주요 현안에서 그들의 주장이나 정책 일부를 허용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에서는 극우 정당이 주류 정치로 진출하자 "이기지 못할 바엔 합류하라"며 극우 정당을 중심으로 연립정권을 출범하기도 했다.

반이민 정서가 확산하는 가운데 이주정책으로 인한 사회갈등의 시험대와 같은 독일에서 극우폭력 사건은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독일 경찰 통계에 따르면 난민,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주민들에게 지지를 보낸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까지 겨냥한 극우 성향의 인종차별적 증오범죄는 2017년 1천200여건에서 2018년 1천664건으로 늘었다.
독일 당국은 지난주에도 정치인이나 난민, 무슬림을 겨냥해 극우 테러 공격을 모의한 용의자 12명을 체포됐다.
작년 10월 독일 할레에서는 극우 성향의 반유대주의자가 유대교 회당에 침투하려다가 2명을 총으로 쏴 살해하고 다수를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난민을 옹호하던 헤센주 카셀의 지역 정치인 발터 뤼프케가 극우주의자에게 피살됐다.
2016년 7월에는 우파 극단주의 성향의 18세 이란계 독일인이 뮌헨 중심부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사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하나우 테러 용의자를 비롯해 과거 테러범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었던 정신 질환을 주목하고 있다.
극우정파의 공공연한 차별적 발언과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선동에 자극을 받은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런던 킹스컬리지의 피터 뉴먼 보안학 교수는 "모든 테러범의 이력이 이상할 정도로 유사하다"며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성과 문제가 있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남성들"이었다고 말했다.
뉴먼 교수는 이들 범죄자가 모두 극단주의적 이념을 담은 선언문을 직접 작성했다는 사실을 공통점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sy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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