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환자 폭증에 '아비규환'…1천800여명 사망에 상흔 깊어
'인민전쟁' 선포 총력대응에 보건여건 개선…신규환자 감소세
中공산당 중대 도전…韓총영사관, 교민집 돌며 식량·의약품 지원
하루 60명씩 사망…"봉쇄 풀려도 '정상'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
(상하이·홍콩=연합뉴스) 차대운 안승섭 특파원 = 중국 우한(武漢) 주민 샤청팡(28)씨의 할아버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빠르게 퍼지던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였지만 병원 문턱 밖에서 숨을 거뒀다.
가족들은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숨지면 장례 절차 없이 곧바로 화장장으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도도한 물줄기의 창장(長江)이 굽이쳐 지나는 유서 깊은 중원의 도시 우한이 거대한 '통곡의 도시'로 변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3일 새벽, 전격적으로 코로나19 발생 지역인 우한시 봉쇄를 발표했다.
우한을 오가는 항공편이 중단됐고, 기차는 우한의 주요 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우한 바깥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검문소가 들어섰다.
중국 내 누적 확진 환자가 1천명 가까이 치솟자 타 지역으로 확산을 막는다며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예상 못 한 봉쇄 조치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버스, 전철, 택시 등 운행이 중단되고 자가용 운행까지 금지되면서 우한은 거리에서 오가는 이를 찾기 어려운 '유령 도시'로 변했다.
코로나19 확산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환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든 병원에는 '아비규환' 상황이 벌어졌다.
살겠다면서 치료를 받으러 병원마다 복도까지 환자와 가족들이 가득 찼다. 이는 병원 내 코로나19 집단 감염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많은 환자가 병원의 문턱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병세가 악화해 집에서, 심지어 거리에서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지난 8일 우한 주민 리리나(李麗娜)씨는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앉아 울며 스테인리스 그릇을 두드리면서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모친이 위중해졌지만 병원에서 받아주지 못하자 절박한 마음에 '베란다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해 우한을 봉쇄했지만, 의료 물자 및 인력 지원은 더디기만 했다.
발원지인 우한을 비롯한 후베이성 주민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희생을 요구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사태가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우한 의료 기관과 현지 정부 기능은 거의 붕괴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마저 나왔다.
22일까지 우한에서 숨진 것으로 공식 집계된 이들은 1천857명으로, 봉쇄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60명씩 사망한 셈이다.
하지만 병원에 아예 입원조차 하지 못했거나, 입원했어도 코로나19 확진 검사를 받지 못하고 숨진 이들 다수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실제 숨진 이들의 규모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지적을 단지 '음모론'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우한의 영화감독 창카이(常凱) 일가족의 사망이 바로 그런 경우다. 창카이 본인과 의사인 그의 부모, 누나 등 일가족 4명은 잇따라 코로나19 증세로 숨졌다.
"여러 병원 전전하며 애걸했지만 병상을 못 구했다"며 한탄한 그의 유서는 우한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증거다.
창장(長江)일보는 22일 우한시가 코로나19 확진 검사 능력을 하루 1만4천건으로 대폭 확충해 적체된 검사 건수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금껏 의심 환자에 대한 확진 검사가 적기에 이뤄지지 못했음을 당국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버림받은 도시' 우한에서 시민들을 그나마 지켜낸 것은 현지 의료진이었다.
마스크 같은 기본적인 의료 물자도 부족한 상태에서 의사들은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무려 3천명이 넘는 후베이성 의료진이 코로나19에 걸렸고 우창병원장 류즈밍(劉智明) 등 많은 이들이 숨졌다. 이는 '맨몸'으로 코로나19와 전쟁에 나선 이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내야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중국 당국이 뒤늦게나마 '인민 전쟁'을 선포하고 총력 대응에 나서면서 최근 우한의 보건 여건은 크게 개선됐다.
훠선산(火神山)병원 등 새 병원이 긴급히 지어졌고, 체육관과 컨벤션센터 등이 임시 병원으로 활용되는 등 수만개의 병상이 확충됐다.
또 중국 전역에서 3만명이 넘는 민·군 의료진이 우한 등 후베이성 일대 도시에 대규모로 투입되면서 적체 환자가 거의 없어졌다고 중국 당국은 설명했다.
의료진과 시설 증강, 확진 검사 증강을 통해 환자들이 대거 의료 체계 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적어도 공식 통계상으로 우한과 후베이성 일대의 신규 확진 환자는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 21일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성의 일일 신규 확진자는 366명까지 줄어들었다. 지난 12일 임상 진단 병례까지 포함해 하루에만 무려 1만4천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새로 나온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중국 당·정이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사태 축소에 급급해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코로나19의 존재를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훈계' 처벌을 받은 것은 진상 축소·은폐의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코로나19 확산 사태 발생 이후 많은 중국인은 전례 없이 당국과 체제에 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중국판 체르노빌' 사태로 비유하기도 한다.
질병 확산 추세가 다소 꺾인듯하지만 6천만명에 달하는 후베이성 주민들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천만 가택 연금'을 기약 없이 계속하고 있다.
우한은 여전히 '유령 도시'의 모습이다.
교민들을 진료하기 위해 정부 전세기를 타지 않고 우한에 남은 의사 이상기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 우한 시민들과 교민들이 모두 자택에서만 머무르고 단지 내 산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한에 남은 우리 국민과 가족들의 경우에는 우한 총영사관 관계자들이 직접 각 가정을 돌며 라면 등 비상식량과 의약품, 마스크 등을 지원하고 있어 현지인들보다는 사정이 많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중국의 지식인들은 공개적으로 시 주석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사퇴를 요구하기도 해 중국공산당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 유혈 진압 사태 이후 최대의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 주석은 지난 6일부터 코로나19 저지전을 '인민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후베이 파견 중앙 지도조'의 일원인 딩샹양(丁向陽) 국무원 부비서장은 지난 20일 "이번 질병 상황은 건국 이래의 일대 비상 전쟁"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중국 지도부가 느끼는 위기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우한이 '상실과 회한의 도시'가 됐다면서 "봉쇄가 풀린 후에도 우한은 절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구 1천100만 명의 도시인 우한은 많은 시민이 봉쇄 전에 빠져나가 현재 900만 명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한 달째 우한에서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우한 주민인 앤디 왕은 공공교통 운행이 중단된 우한에서 자신의 자가용을 이용해 의료진을 출퇴근시키는 봉사를 하면서 겪은 일을 전했다.
지난달 31일 왕 씨는 일주일 만에 퇴근하는 한 간호사를 차에 태웠는데, 이 간호사는 집으로 가는 길에 부모를 보고 싶어했다.
왕 씨는 "그 간호사는 부모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봐 두려워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복도에 서서 부모와 안부 인사를 나눴다"며 "전에는 거의 울어본 적이 없는데, 이달에만 10번 넘게 울었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며, (봉쇄가 풀려도) 이전과 결코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외출이 금지된 탓에 우한 주민들은 온라인으로 생필품을 주문한 후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물품을 받는다. 야채, 고기, 달걀 등의 가격이 올랐지만, 주민들은 이를 감수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우한 주민인 셰리 왕은 "일부 생필품이 부족해 주부들이 모인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는 어디서 기저귀나 분유를 살 수 있느냐는 대화가 날마다 오간다"고 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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