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전기역학 기반 닦고 '과학은 반역이다' 등 대중서도 집필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양자 전기역학의 기반을 닦은 이론 물리학자이자 과학에 관한 다양한 대중서를 집필한 작가인 프리먼 J. 다이슨 박사가 지난달 28일 타계했다. 향년 96세.
다이슨이 60년 이상 몸담은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는 그의 죽음을 발표하면서 "인간과 양자 세계를 잇는 계산을 포함한 혁명적인 과학적 통찰력으로 핵공학과 고체물리학, 페로 자성(磁性), 천체물리학, 생물학, 응용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다이슨은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다가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공군 폭격기사령부에서 수학을 응용해 폭격 계획을 짜는 민간인 분석가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미국 코넬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한스 베테 교수 아래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때 빛이 물질과 작용하는 방식에 관한 이해를 심화하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전자와 광자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리처드 파인먼 당시 코넬대 교수의 방식과 그 대척점에 있는 줄리언 슈윙거 하버드대 교수의 방식이 서로 같다는 점을 증명했다. 현대과학에서 손꼽히는 업적 중 하나인 양자 전기역학(QED)에 관한 이 논문은 동료들 사이에서 노벨상을 탈 만한 가치가 있는 논문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파인먼과 슈윙거 교수는 1965년에 일본 물리학자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와 함께 양자 전기역학에 관한 학문적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여기에는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는 나중에 "노벨상을 바란다면 예외 없이 10년 이상 중요하고 심오한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다이슨은 학문적 업적을 넘어 우주탐사 분야의 다양한 제안과 과학 대중서 출간으로 더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핵 추진 대형 탐사선으로 태양계 행성을 탐사하는 오리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유전자를 조작한 식물을 심어 외계 식민지를 구축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항성의 복사 에너지가 행성계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이를 완전히 둘러싸는 거대 구조물을 만들어 항성의 복사 에너지를 받아쓰는 '다이슨구'(Dyson sphere)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를 고등 기술 문명의 필연적 귀결로 지적하며 지적 외계생명체를 찾는 길로 제시했다.
다이슨은 55세 때 '에로스에서 가이아까지'(From Eros to Gaia)를 시작으로 '과학은 반역이다(The Scientist as Rebel),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Disturbing the Universe) 등 다양한 대중서를 펴냈다. 2000년에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룬 '종교에서의 진보'(Progress in Religion)로 종교활동 증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템플턴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런 다채롭고 혁혁한 업적에도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지는 못했다. 박사과정 중 코넬대에서 교수로 임용됐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맞지 않는다며 2년 만에 IAS로 자리를 옮겼으며,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이슨은 인류에 의한 지구온난화 모델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하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고 빙하기 도래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런 주장이 과학적 근거보다는 낙관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일축하고 있다.
eomn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