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니 대통령, 포로 교환에 이의…탈레반 "대원 석방 없으면 대화도 없어"
美 정치권 "안보 위협 가능성"…인도, 파키스탄 영향력 확대·테러 근심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 간에 역사적인 평화합의가 타결됐지만 곧이어 아프간 안팎에서 불협화음과 우려가 속출하고 있다.
아프간에서 발을 빼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미국이 아프간 정부와 주변국에 책임을 떠넘긴 채 탈레반에게 성급하게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것이다.
과거 탈레반 치하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은 아프간 여성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이 퍼지는 분위기다.
합의 타결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일 미국의 아프간 파트너인 정부 측에서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정부는 5천명의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관한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탈레반은 합의의 신뢰를 확인하기 위해 이달 10일까지 국제동맹군·아프간 정부군에 수감된 탈레반 대원 5천명과 탈레반에 포로로 잡힌 아프간군 1천명을 교환하기로 했는데 아프간 정부는 '모르는 일'이라고 밝힌 것이다.
가니 대통령은 "포로 교환은 미국의 권한이 아니고, 그들은 조력자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했다고 톨로뉴스 등 현지 언론과 외신은 밝혔다.
아프간 정부는 포로 교환은 탈레반과 협상에서 사용해야 할 핵심 카드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아프간 정부의 동의 없이 탈레반에 선뜻 '선물'로 내준 것이다. 미국은 생색만 내고 뒷감당은 아프간 정부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가니 대통령은 "포로 교환은 탈레반과 회담 때 논의돼야 할 사안이지 전제조건이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탈레반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2일 로이터통신에 "수감된 5천명이 풀려나지 않으면 아프간 내부 정파 간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으로 아프간에 평화가 완전히 구축되려면 외국군 철수와 함께 기존 정부와 탈레반 간의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평화합의 선언 이틀 만에 정파 간 협상 개시에 암운이 드리운 셈이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반대로 이번 평화협상에 참여하지 못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는 미국의 꼭두각시라며 그간 직접 협상을 거부해왔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 출연해 "신뢰 구축 작업을 위해 모든 관련 당사자와 작업해 나갈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미국은 이번 합의에서 아프간에 파병된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국제동맹군을 14개월 안에 모두 철군하기로 했다.
대신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조직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는 활동 무대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합의서에 '폭력 감축' 연장과 관련한 언급이 없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양측은 이번 평화합의에 앞서 지난달 22일부터 일주일간의 폭력 감축 조치에 동의했다.
탈레반은 합의서 서명으로 폭력 감축 기간은 끝났다는 입장이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폭력 감축은 공식적으로 종료됐고 정상적인 작전(normal operations)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 감축 이전과 같은 전투와 테러가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하지만 가니 대통령은 지난 1일 "합의에 따라 폭력 감축은 연장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정전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미국 측이 탈레반 측에 이 점을 분명히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평화합의 내용과 관련해 미국 정치권에서도 이견이 나왔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인 리즈 체니 의원은 이번 합의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양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체니 의원은 워싱턴포스트에 "탈레반의 이행 여부를 확인할 뚜렷한 방법 없이 탈레반 대원 석방, 제재 해제, 철군 등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남아시아의 맹주인 인도도 우려의 시선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아프간의 평화 실현을 위해 계속해서 지원해 나가겠다며 평화합의를 환영했다.
하지만 인도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파키스탄이 아프간 내에 영향력을 강화하고, 인도에 대한 각종 테러 지원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은 전통적으로 탈레반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이번 합의 성사에도 깊게 관여했다.
인도 정보기관 RAW에서 일한 틸라크 데바셰르는 타임스오브인디아에 "아프간 내에 통제되지 않는 지역이 테러 그룹의 근거지가 될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며 "파키스탄은 그런 공간을 활용해 반인도 테러의 기반으로 활용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합의의 최대 수혜자는 탈레반과 파키스탄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파키스탄은 이번 합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고 파키스탄 지오뉴스가 보도했다.
한편, 아프간 정부 장악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도 탈레반의 정치권 복귀를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탈레반은 과거 1990년대 후반 집권기에 엄격한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내세워 여성의 삶을 강하게 규제했다. 여성 교육에 제한이 가해졌고 여성들은 공공장소 부르카(여성의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 착용해야 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제약이 이뤄졌다.
이혼한 30대 여성인 세타라 아크리미는 AFP통신에 "탈레반이 또다시 나에게 집에만 머무르라고 한다면 나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도 카불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테헤라 레자이도 "탈레반의 사고에는 변화가 없다"며 "앞으로 나 같은 직장 여성에게는 상황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레반은 2001년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 등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침공을 받아 정권을 잃었다.
하지만 이후 꾸준히 세력을 회복, 현재 아프간 국토의 절반 이상을 사실상 장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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