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지시로 충분한 검토 없이 '탑다운' 방식 급조
마이니치 "중국과 지지기반 자민당 보수파 양쪽 배려한 것"
한국 반발에 일본 외무상 "1만명당 감염자 수로 판단했다"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제한 강화를 측근에게 지시한 것은 발표 하루 전인 4일 오전이라고 아사히(朝日)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이번 발표가 충분한 검토 없이 아베 총리의 지시에 따라 '탑다운' 방식으로 급조됐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4일 지시에 따라 5일 오전 스기타 가즈히로(杉田和博) 관방 부장관 주재로 후생노동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경제산업성의 사무차관과 출입국재류관리청 장관 등이 모여 회의를 했다.
총리관저의 당초 안은 한국과 중국에서 입국하는 사람에 대해 검역법에 따라 검역소장의 판단으로 2주 동안 '정류'(停留·일정한 장소에 머무는 행위)를 요구하고, '조건부 상륙 허가'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생성이 그런 조치는 현행법상 감염 의심자 등을 상정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5일 저녁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가 임박하자, 총리관저는 검역법에 기초하지 않은 '대기 요청'으로 하고, '조건부 상륙 허가'는 삭제하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결국 법적 근거도 없이 한국과 중국에서 입국하는 사람에 대해 2주 동안 사실상의 자가 격리를 요청하는 것으로 졸속 결정된 셈이다.
아베 총리가 갑자기 한중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한 것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이 '중국 전역으로부터의 입국 거부'를 지속해서 요구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중국과 지지기반인 자민당 보수파 양쪽을 배려한 것"이라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 연기 발표에 맞춘 입국제한 강화는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보수층을 향해 대(對)중국 강경 자세를 보여주는 정치적 '연출'에 역점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 방일 연기 발표 이후 한중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함에 따라 중국의 체면도 세워줄 수 있었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실제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한국의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6일 일본에 대한 비자 면제와 이미 발급된 비자의 효력 정지 등 대응조치를 발표하면서 "정부는 사전협의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일본 측의 이번 조치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코자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방역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반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감염률 등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6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1만명당 코로나19 감염자는 5일 현재 한국이 가장 많은 1.12명, 다음이 중국의 0.58명이라며 한중 입국제한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그러면서 "외교적 관점에서 다른 문제와 관련 지어 취한 조치는 아니다"며 한국의 반응은 오해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외무성은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하기 직전인 5일 저녁 한중 양국에 3월 말로 한정된 대응임을 강조하면서 이해를 구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전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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