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코로나19라는 공포의 바이러스가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역병'에 의한 혼란은 그 범위나 참상이 국지적인 전쟁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중국의 한복판 우한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창궐할 때만 해도 남의 일인 양 구경하던 미국과 유럽인들이 이젠 "결코 남의 일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끼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20세기 전 세계적으로 2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도 발원지가 중국 남방지방이었다는 과학자들의 추적이 있습니다. 14세기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도 중국 남쪽에서 발원해 몽골군을 통해 전파돼 유럽을 초토화했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무차별적인 감염병의 습격은 그래서 국내정치를 넘어 외교의 영역으로 확대됩니다.
미국을 비롯해 많은 서방국가들이 '우한 폐렴' 사태 초기만 해도 중국인 입국제한 등으로 대처했지만 본국마저 코로나 공포에 떨고 있는 지금은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 됐습니다.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지만 봉쇄로는 감염병 확산의 시간을 늦출 뿐 차단은 못합니다. 주권을 가진 세계 각국이 서로 다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국경을 걸어 잠그는 국가도 있을 것이고, 개방을 유지하되 투명한 통제와 철저한 방역으로 대처하는 나라도 있을 겁니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방역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무려 140여개국에 달합니다. 자국민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을 막는 것을 나쁘게 보면 안 됩니다.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개별 국가의 선택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공공의료체계로 말할 것 같으면 세계에 자랑해도 무리가 없을 한국이라면 현재처럼 개방성과 투명성을 근간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한 개인은 물론이고 가족, 사회, 그리고 국가 단위로도 움직입니다. 역병의 시대, 그 전파의 범위가 이미 세계적인 만큼 세계사람들이 서로 엮여서 움직입니다.
역병은 이겨내는 것입니다. 과거 세계를 흔들었던 감염병들이 그렇듯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역병의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지나갈 것입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은 본능입니다. 나만 살려고 할 때 눈에 보이는 게 없을 때도 있습니다.
본능과 관련된 우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프랑스 작가 장 드 라 퐁텐의 우화 '전갈과 개구리' 얘기입니다.
개구리가 강을 건너려는데 헤엄을 못 치는 전갈이 나타나 자신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널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개구리가 전갈에게 말합니다. "널 어찌 믿어 넌 전갈이잖아. 독침으로 내 등을 찌를 수 있어. 그럼 우리 둘 모두 죽게 될 걸" 하면서 거절합니다.
전갈이 대답합니다. "날 믿어줘.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우리 둘 다 죽을 텐데 어찌 내가 그런 일을 하겠니?"
개구리는 전갈의 위협도 있었지만, 맘이 약해져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전갈을 등에 태우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죠. 곧 강을 건너 서로 갈 길을 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강 한가운데 다다랐을 즈음 물살이 거세지자 전갈이 갑자기 개구리를 찌르고 맙니다. 개구리는 옆구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전갈이 자신을 물었음을 알아차립니다.
원망 어린 눈으로 전갈을 바라보며 개구리가 외칩니다. "도대체 왜 그랬어?"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전갈이 개구리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깁니다.
"미안해. 상황이 급하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본성을 어쩔 수 없었어."
본능이란 이렇게 무섭습니다. 자신마저 죽을 걸 알면서도 찌르고 보는 게 전갈의 본능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건 말건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게 '본능'입니다. 이런 얘기가 어디 전갈에게만 국한되겠습니까.
의도적으로 충돌하는 것도 무섭지만 본능적 우발성으로 인해 참사가 벌어지는 경우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대혼란의 시기에는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갈을 만나 지옥의 테스트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도 생물입니다. 사람이 모여 만든 권력도 당연히 생물체의 속성을 온전히 갖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일을 만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홍콩독감,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대형 감염병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 특징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화 현상'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는 이제 어떤 특정 국가 혼자의 힘으로 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역병의 세계화 시대를 통제할 보다 합리적인 공존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졌습니다. 인간이라는 생물체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일찍이 맹자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인간이란 선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선한 마음(不忍之心)'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우물가로 걸어가서 빠지려고 하는 순간 누구나 놀라서 황급히 그 아이를 붙드는 것이 인간이란 얘기입니다. 이 또한 본능입니다.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온정의 물결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 생각이 더욱 간절히 듭니다. 역사적 악연마저 뛰어넘는 인류애가 발휘될 때만이 '전갈의 본능'을 아주 잠시나마 자제하는 지구촌이 되지 않을까요?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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