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무관중 경기땐 '재정적 파탄'…연기도 '비현실적'
운명 결정 키는 코로나19 상황에…'플랜B' 내부 검토설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인류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증거로서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실현하는 것에 대해 G7 정상들의 지지를 얻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주요 7개국(G7) 정상 간의 화상 전화회담을 마친 뒤 올 7~9월 예정된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 문제에 대해 밝힌 입장이다.
아베 총리는 이 말을 하면서 시기를 언급하지 않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선 연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연기도 취소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옵션이라는 목소리가 대회 조직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올림픽 대회 운영의 결정권을 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세계보건기구(WHO)의 판단을 근거로 취소할지, 연기할지, 아니면 무관중 경기 등으로 축소해 치를지 결정하겠지만 이 가운데 어떤 옵션도 일본으로서는 차선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딜레마의 상황이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장도 조직위 내에서 연기 가능성이 처음 거론된 직후인 지난 11일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올림픽을 추진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자세"라며 "지금 단계에서 방향이나 계획을 바꾸는 것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都) 지사와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도쿄올림픽·패럴림픽 담당상도 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지난 12일 예정대로 개최해야 한다거나 정상적으로 개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처럼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측 올림픽 관련 핵심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정대로 개최'를 계속 주장하는 것에 대해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다.
연기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우선 꼽히는 것은 대회 관계 시설을 다시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회 조직위는 경기장 시설 외에 올림픽을 치르는 데 가장 중요한 인프라로 볼 수 있는 메인프레스센터와 국제방송센터를 일본 최대 규모 국제전시장인 도쿄빅사이트에 설치키로 하고 사용 계약을 맺었다.
연간 300건이 넘는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사용 예약을 1년 6개월 전부터 받는 이 시설을 새 올림픽 일정에 맞춰 재임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수촌 확보도 문제다. 도쿄도 주오(中央)구 하루미(晴海)에 총 23개동, 5천600가구 규모로 지어진 선수촌 아파트는 올림픽이 끝난 뒤 개수 공사를 거쳐 일반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미쓰이부동산 등 10개 업체가 공급하는 일반분양 물량은 총 4천145가구로, 작년 7월부터 판매가 시작돼 이미 940가구가 팔려나갔다.
올해 올림픽이 연기되면 입주 시기도 자연스레 미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입주 예정자들과의 분쟁이 생길 수 있다.
연기할 경우 대회 조직위 차원의 인력 유지·확보도 난제로 거론된다.
현재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에는 올 초 기준으로 3천명 넘게 근무하고 있다.
연기하면 조직위의 전체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차치하고도 이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쿄도 공무원과 중앙정부 및 다른 지자체 파견 공무원들이 예정대로 복귀할 수 없게 되면서 인사 차질 등 수많은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미 교육을 마친 약 8만명의 대회 자원봉사자와 3만여명의 도쿄도 자원봉사자를 재편하는 것도 큰 숙제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대회 취소나 차선책인 무관중 경기 상황을 맞게 되면 대회 조직위는 재정적 파탄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조직위의 재정 손실은 도쿄도가 메워 주고, 도쿄도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은 중앙정부가 보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결국은 일본 전체의 손실로 귀결된다.
대회 조직위는 6천300억엔(약 7조3천억원)의 올림픽 예산 가운데 900억엔을 입장권(올림픽 508만장, 패럴림픽이 165만장) 판매 수입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만에 하나 대회가 취소되거나 무관중 경기로 결론이 나면 이 수입은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다.
'입장권 구입·이용 규약'에는 공중위생에 관련된 긴급사태로 규약상 의무(입장권 구매자의 경기관람권 보장)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조직위가 책임 지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 취소가 현실화할 경우 입장권 환불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또 취소될 경우에는 방송중계권 수입을 챙기는 IOC가 대회 부담금으로 조직위에 주게 될 850억엔도 감액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 조직위는 티켓 판매 수입 결손과 IOC 부담금 감액으로만 1천억엔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회 개최 자체가 무산되면 3천300억엔(약 3조8천500억원) 이상으로 조직위가 기대했던 일본 기업 등의 협찬금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2013년 올림픽 유치 이후 7년 동안 경기장 건설 등에 투입한 1조엔(약 12조원) 이상의 준비 비용은 헛돈을 쓴 셈이 된다.
여기에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 60만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 방일이 없던 일로 돼 버리면서 일본 경제가 간접적으로 보는 손실은 추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나가하마 도시히로 다이이치세이메이(第一生命) 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도쿄 올림픽이 취소되는 경우 일본의 경제손실 예상액이 2조6천억엔(약 3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람객의 숙박과 이동 등과 관련한 개인소비 부문 손실로 1조8천억엔, 방일 외국인의 소비 부문 손실로 8천억엔으로 각각 추산한 결과다.
IOC는 WHO 조언을 토대로 오는 5월쯤 취소할지, 연기할지 등 방향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IOC는 일단 17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 회의를 연 뒤 발표한 성명에서 도쿄올림픽이 4개월 이상 남은 현 단계에선 "어떠한 극단적(drastic)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며 정상 개최를 위해 전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는 아베 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인류가 코로나 19를 이겨낸 증거"로 도쿄올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치르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IOC와 일본 정부가 아무리 정상적인 개최를 원하더라도 이번 도쿄올림픽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코로나19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회 조직위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취소, 연기, 무관중 개최 등 '플랜B'를 상정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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