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회복세지만 미국 등 수요국으로 퍼지며 한국무역 위기 고조
고환율·증시 패닉 속 기업 불확실성 확대…정부는 특약처방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김동규 김영신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한국의 실물경제가 유례없는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실물경제의 대표적인 지표인 수출은 이미 코로나19의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고 미국이나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요가 위축되면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이 받을 충격은 훨씬 확대될 전망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생산과 소비 절벽이 금융 불안을 키우고 금융 공황이 다시 실물 경제를 뒤흔드는 악순환을 보여 앞선 위기보다 그 파장이 더 클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19가 11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50조원 규모의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세계경제 위축과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대비한 보다 확장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 해외의존도 높은 한국 무역 흔드는 코로나19 펜데믹
1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한국 실물경제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한국의 일평균 수출은 2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7% 감소한 데 이어 3월 1∼10일에도 2.5% 내려앉았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중국으로부터의 수출이 점차 회복되면서 일평균 수출 감소 폭은 둔화됐지만,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주요 수요처인 미국, 유럽 등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1분기 수출 플러스 전환이 가능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수입은 고환율로 비상이 걸렸다.
19일 오전 원/달러 환율이 폭등해 장중 한때 달러당 1천300원 선에 육박했다.
해외에서 물건을 사들이는 수입업체의 경우 달러 가격이 올라가면 그만큼 더 비싼 가격에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
반대로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업계는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물건을 파는 효과가 생겨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한국의 무역구조를 생각하면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수입협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수입구조는 중간재 비중이 49.7%에 달해 수입이 어려워지면 수입한 원자재를 가지고 완성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제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의 유가 하락도 마찬가지다.
석유 수입국인 한국 입장에서 유가 하락은 기본적으로 교역조건을 개선하고 경상수지 흑자를 늘려 전반적으로는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유가 하락이 공급 측면에서 기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공급 과잉으로 유가가 떨어졌다면 아낀 기름값만큼 구매력이 늘겠지만, 반대로 세계경기 둔화 등 수요자 측 요인에 기인한다면 실질구매력 상승에 따른 이익은 상쇄되고 오히려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더 커질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환율이나 유가가 업종마다 미치는 영향이 달라서 수출입 전반에 좋다, 나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개별 기업의 실적에는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유가 하락 자체만 두고 부정적이라 보긴 어려우나 그 원인이 세계경제 부진에 있다는 점에서 국내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자동차 '울상'·반도체 '불안'…수요 위축시 산업 전반 직격탄
코로나19 사태가 기업에 주는 가장 큰 걱정거리는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위협받고 세계경제가 위축되면서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으로부터 자동차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배선 뭉치)를 들여오지 못해 국내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사태를 이미 겪었다.
현재는 중국과 국내 관련 공장 가동률이 정상 수준을 회복한 상태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현대차[005380] 미국 앨라배마 공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18일(현지시간) 가동을 중단했다.
폴크스바겐, BMW, 르노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코로나19의 여파로 잇달아 공장 가동을 중단해 이들 업체에 납품하는 기업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됐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국내 자동차 업계 전망이 굉장히 불투명하다"며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뒤지지 않는 수준의 어려움이 있을 거로 본다"고 우려했다.
특히 "유럽 공장이 거의 멈춘 상황"이라며 "일단 2주간 쉰다지만, 여의치 않으면 기간을 또 늘릴 수 있다"고 수요 충격을 우려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현재 유럽이나 미국 상황을 보면 공장 가동도 일시 중단한다는 수준이니 심각한 상황"이라며 "수요절벽이 우려돼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전망도 계속 하향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국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는 아직 양호한 편이다.
2월 반도체 수출액은 74억2천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9.4% 증가했다. 15개월 만에 증가로 전환했을 뿐 아니라 증가 폭도 높은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개인용 컴퓨터(PC)에 주로 쓰이는 D램(DDR4 8Gb 기준) 고정거래가격은 2월 말 기준 평균 2.88달러로 전월보다 1.4% 상승했다. 서버 D램(32GB) 2월 가격은 115.5달러로 전월보다 6.0% 증가했다.
코로나19에도 북미 지역 중심의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어나며 회복세가 이어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처럼 장기적인 메모리 수요는 견조하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세계경제 충격으로 전후방 산업의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반도체 산업은 당장 문제가 있는 단계가 아니지만, 불확실성 계속 높아지고 있어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 세계경제 위축 가시화…정부 '특약처방'에도 기업 불안 여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자 주요 경제예측기관들은 세계경제 성장률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MO캐피털은 한 달 전 2.7%에서 2.0%로 성장률 전망치를 0.7%포인트 하향 조정했고,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3.0%에서 2.0%로 내렸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9일 발간한 '무역과 개발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5%에서 1.7%로 내렸다.
세계경제의 위축은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에 더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어렵게 물건을 만든다고 해도 팔 곳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한 지난해 수출의 경우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하강기, 유가 하락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수출액 감소분이 전체의 91%에 달했다.
또 세계경제 침체로 인한 무역 위축은 기업의 경영 악화, 일자리 감소, 가계소득 감소 등 연쇄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19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11조7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짜고 한국은행은 1.25%인 기준금리를 0.5% 인하했다.
19일에는 한국의 경제 고리에서 가장 취약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50조원을 지원하는 특약처방을 내렸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16일 국책연구원장들과의 긴급 간담회에서 ""전례 없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대응도 평소와 달라야 한다"며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면서 수출 피해 최소화와 실물경제 활력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코트라(KOTRA)와 무역협회 등 무역 관련 기관은 화상상담회나 현지 무역관을 통한 업무 대행 등을 통해 기업의 눈과 발이 돼주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느끼는 불안감은 여전히 크다.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시장 발굴이나 거래처 관리 등 기본적인 활동마저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 환경 악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직접적인 피해가 큰 여행업 등 내수업종이나 중소 자영업자 등에 지원이 집중돼 있다"며 "하지만 주요 사업의 수출업체들이 만약 못 견디고 파산하면 코로나19가 잦아들어 글로벌 수요가 회복됐을 때도 수출 회복이 안 돼 결국 내수가 함께 망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n@yna.co.kr, dkkim@yna.co.kr,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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