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지역은 사실상 전쟁터…현지 언론 "2차대전 이후 최대 비극"
'죽음의 도시'로 변한 베르가모…군트럭으로 시신 다른 지역 이송
직격탄 맞은 경제 올해 역성장 전망…관광산업은 60년전으로 회귀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을 휩쓸던 지난 1월 말(현지시간),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온 60대 중국인 관광객 부부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곧바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대만 등을 오가는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시켰다.
코로나19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중국과의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한 것도 유럽 국가 중 처음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탈리아에 향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2월 21일 북부 롬바르디아주내 인구 1만6천여명의 작은 마을 코도뇨에서 38세 남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탈리아 첫 지역 감염자로 현지에선 '1번 환자'로 명명됐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바이러스는 이탈리아 경제력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무섭게 확산했다. 하루 평균 1천850여명이 감염 판정을 받았고, 사망자도 평균 160여명씩 쏟아져나왔다.
급기야 지난 20일에는 누적 사망자가 수가 중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21일 현재 누적 확진자는 5만3천578명, 누적 사망자는 4천825명이다.
롬바르디아주에선 매일 1천명 안팎의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의료시스템 자체가 사실상 붕괴 위기에 처했다. 21일 현재 누적 확진자는 2만5천515명으로 이탈리아 전체 47.6%다. 누적 사망자도 전체 64.1%인 3천95명이다.
이 때문에 의료진은 물론 병실, 의료장비 부족으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치료를 받고자 자택에서 대기하다 숨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의료 현장에선 증상 또는 연령을 고려한 선별 치료 방침에 따라 지병이 있는 고령자들이 치료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는 보고도 잇따른다.
보건당국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의 85.6%는 70대 이상 고령자다. 60대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95.9%에 이른다. 사망자 비중이 40.9%로 가장 큰 80세 이상의 치사율은 21.7%에 달한다.
롬바르디아주에서도 바이러스 타격이 가장 큰 베르가모시는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참상이 이어졌다.
인구 12만명의 이 도시에선 무려 5천여명의 누적 감염자가 발생했다. 인구 규모는 이탈리아 전체의 0.2%인데 누적 감염자 비중은 11%에 이른다.
사망자도 하루 50명씩 쏟아지며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병원 영안실에 공간이 없어 성당까지 관이 들어찼다.
화장장을 24시간 가동해도 넘쳐나는 시신을 감당하지 못해 군용차량이 다른 지역으로 관을 옮기는 사진과 영상은 전 세계를 숙연케 했다.
1∼2페이지에 불과하던 베르가모 지역 신문의 부고란은 최근 10페이지까지 늘었다. 현지 언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비극"이라고 전했다.
발병 초기 북부를 중심으로 퍼지던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며 빠르게 남하하고 있다. 시칠리아·사르데냐섬을 포함해 20개 전역에서 감염자가 보고됐다.
남부지역의 경우 누적 확진자 수는 많지 않지만 문제는 확산 속도다. 바실리카타·풀리아·시칠리아 등 일부 주는 하루 기준 확진자 증가율이 20%를 넘는다.
북부보다 훨씬 의료시스템이 빈약한 남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감염자가 쏟아져나오면 또 다른 비극이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세계에서 8번째 규모인 이탈리아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국가 경제의 역성장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2008년 금융 위기에 이후 장기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와중에 받은 일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0.6%로 전망했다. 또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37%(작년 말 기준 134.8%), 재정적자는 GDP의 2.6%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지 경제 분야 싱크탱크인 REF는 1분기 GDP가 무려 8%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로 지난달부터 사실상 외국인 방문객이 끊긴 데다 전국 이동금지령까지 내려지면서 이탈리아 GDP의 13%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은 말 그대로 '궤멸적 타격'을 입고 있다.
현지 관광업계는 올해 방문객이 연인원 기준으로 작년(4억3천만명) 대비 60%나 감소한 1억7천200만명에 머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60년 이후 60년 만에 최저치라고 한다. 코로나19가 60년간의 관광 붐을 단번에 날려버린 셈이다.
이에 따른 관광 수입 감소액도 연간 290억유로(약 3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탈리아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2일 "코로나19가 세계 금융 위기로 이어진다면 그 시작은 이탈리아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탈리아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말 95.38bp에서 3월 중순에는 201.65bp까지 뛰어올랐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기업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하는 파생상품이다. CDS 프리미엄이 높아진다는 것은 해당 국가·기업의 부도 위험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의 비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이르면 3월 말께 바이러스 확산세가 정점에 이르고 이후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도 나오지만 장담하긴 어려운 일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내달 말까지 누적 확진자 9만명을 기점으로 바이러스가 잡힐 것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의 확산 속도라면 10만명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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