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 "펀더멘털·밸류에이션 무의미한 장세"
"치료제 임상 결과 등 지켜봐야"
(서울=연합뉴스) 증권팀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불황 우려가 커지면서 23일 국내외 금융시장의 충격이 계속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5.34%(83.69포인트) 폭락한 1,482.46으로 마감, 지난 주 한미 통화스와프 효과로 간신히 되찾았던 1,500선을 1거래일 만에 다시 내줬다.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증시가 불안한 심리에 휘둘려 기초여건(펀더멘털) 및 평가가치(밸류에이션)가 무의미한 상태가 됐다면서 세계적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이 같은 극도의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으로 우려했다.
따라서 향후 치료제 임상 결과, 미국·유럽의 신규 확진자 수 감소 등이 증시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또 코로나19가 진정돼도 이에 따른 세계 실물경기 위축과 기업 실적 하락이 현실화하는 단계가 아직 남아 있으므로 투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이창목 NH투자증권[005940] 리서치본부장
현재 상황에서 주가지수 지지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밸류에이션에 기반한 판단이 먹히지 않는 장이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미국 자금시장에서 에너지 업체들을 중심으로 신용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고, 회사채 관련 지표들이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실물경제 쪽은 침체에 접어드는 단계다. 각국 정부의 여러 부양책 중 가장 규모가 큰 미국 정부 부양책이 상원에서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어떤 식으로든 부양책이 통과하겠지만,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결국 코로나19 사태가 언제쯤 진정되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그것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주가의 저점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결과가 4월 초까지 나오면 단기적으로 가장 큰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상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더 어려워지는 시나리오로 갈 것 같다.
◇ 최석원 SK증권[001510] 리서치센터장
이번처럼 이동·교류가 제한된 전례가 없다. 이번 사태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수준을 넘어선 이후 당초 예상이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 과거 어떤 사례와도 다른 상황이다. 이럴 때는 기다려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단기적 충격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주가도 과거 전염병 당시 경험하지 못한 수준을 찍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재는 코스피 지수 하단을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다. 장이 심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서 펀더멘털 측면에서 해석할 수 없다.
밸류에이션 상 바닥이라고 봤던 선은 이미 깨졌기 때문에 지금 시장이 펀더멘털을 보고 가는 것 같지는 않다. 외국인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매도하는 환경이다. 앞으로도 외국인이 유동성 확보 노력을 계속한다면 이는 가격과 무관하게 매도하는 것이므로 시장 전망에 대해 확신을 갖기 어렵다.
과거 금융위기 때 주가가 고점 대비 50% 이상 빠졌다. 코로나19 사태가 금융위기 같은 상황으로 번질 경우 코스피가 최근 고점보다 50% 정도 빠지면 1,100선이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확신 못 하는 상황이다.
저가 매수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정리될지 지켜보고 하는 것이 맞다. 지금은 자산이 보호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대응하는 게 좀 더 안전할 것 같다.
◇ 오현석 삼성증권[016360] 리서치센터장
과거 극단적인 하락 국면은 '과매도→패닉→항복→혼돈'의 4단계로 진행됐다. 현재는 한국 등 세계 주식시장이 '항복', '혼돈' 단계를 지나고 있어 변동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국가들이 공격적인 통화 완화 정책과 대규모 재정 확대 정책을 가동하고 있어 금융시장이 급작스러운 마비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 때까지 당분간 주가 등 금융 변수들이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이므로 경제의 정상화, 위험자산 상승 재개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지표 전반에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시화되면 기업들의 이익전망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진정 여부와 더불어 경제지표 급랭·기업실적 대폭 하향 조정이라는 사후 확인 단계가 남아 있으므로 아직은 위험관리에 방점을 둘 것을 권고한다.
이미 위험관리 수준 이상으로 급락한 주식을 추가로 비중 축소하는 것은 실익이 적지만, 변동성은 인내해야 할 듯하다. 신규 시장 진입자는 뉴스를 쫓아가는 트레이딩보다는 변동성 국면을 활용한 조정 시 분할 매수 대응이 유리하다.
◇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골드만삭스 등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낮춰 잡고 있다. 1~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했다가 하반기에 정상 국면으로 진입해 3~4분기에 반등한다는 시각이다.
현재 한국 기업의 사정은 1997년 외환위기 때 보다 낫다. 한국 기업의 평균 경쟁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외환위기 때의 저점을 지금 떠올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2분기 코스피 하단을 1,350으로 설정한다. 코스피 상단은 저항선 등을 고려해 1,950으로 제시한다.
코로나19가 여름에도 활동이 뜸해지지 않고 미국의 실업률이 20% 수준까지 상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코스피가 1,000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기업 실적은 하반기에 회복할 것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이 풀어놓은 유동성은 막대하다. 이런 점에 기대를 건다.
◇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미국·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경제 및 기업 실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신규 확진자 수가 감소한 시점이 증시 바닥이었으므로, 향후 유럽·미국 신규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시기가 증시의 큰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들 지역이 지난주부터 적극적인 방역·격리 조치를 시작했으므로 4월 중순 정도가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상반기 중에는 여전히 경제와 증시 모두 어렵겠지만, 각국이 내놓는 적극적인 정책 모멘텀으로 인해 하반기에는 V자 반등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 채권시장안정펀드 출범 등 시스템 위기 차단 장치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도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 중이다. 재정지출에 인색했던 독일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역시 재정지출 준칙 예외조항을 적용해 대대적인 부양책을 결의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국채·기업어음(CP) 매입 등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대규모 재정지출 패키지까지 예고되고 있어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반등세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코스피의 지난 19일 종가는 12개월 후행 주가순자산비율(PBR) 0.58배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 밸류에이션이었다. 본격 반등까지 시간은 필요하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좋은 매수 기회라고 판단한다. 배당수익률 3% 이상의 대형 배당주, 코로나19 이후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서철수 미래에셋대우[006800] 리서치센터장
팬데믹이 미국·유럽 등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어 현시점에서는 경제 전망에 커다란 불확실성이 있다. 상반기, 특히 2분기는 상당한 경기후퇴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나, 그 정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급작스러운 세계 경제활동 중단에 따라 기업 영업활동이 급감하면서 유동성·신용 경색이 심화하는 것이 당장 더 큰 문제다.
당연히 치료제 또는 백신이 해결책이겠지만, 시간이 걸리는 만큼 경제·금융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과감한 정책 공조가 절실하다. 다행히 각국의 정책 공조가 이제 막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므로 코로나19 확산 충격이 얼마나 완화될지 지켜볼 시점이다.
증시 낙폭만 보면 이 같은 우려들은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최근 미국 금융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진행 중인 부채 축소(부채로 조달한 자산매입 포지션의 청산)가 얼마나 끝나가고 있는지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큰 위기인 것은 분명하나, 더 긴 관점에서는 잘 활용하면 오히려 기회로 바꿔나갈 측면도 있다. 그간 밸류에이션 부담 등으로 담지 못했던 세계적 초우량 기업 주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할 수도 있다. 지금은 초우량 기업을 포함한 모든 주식이 도매금으로 급락하고 있지만, 결국 사태가 진정되면 이들이 시장수익률을 크게 넘어설 것이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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