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마스크 부족" 곳곳 호소…뉴욕 등 몰려드는 환자 감당 못할 지경
문 닫은 병원 다시 열고 은퇴한 의사·간호사 불러내고…의대생은 조기졸업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뉴욕에서 마치 제3세계 국가에서 벌어질 법한 시나리오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최대 확산지가 된 뉴욕시의 한 의사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병원의 의료 인프라 부족 상황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고 CNN 방송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의사는 약 2주 전 첫 코로나19 양성 환자를 받은 뒤 지옥문이 열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환자가 물 밀듯 밀려들 것에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환자는 7만5천233명으로 중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아졌다.
특히 최근 하루 1만 명씩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면서 미국 의료 체계가 넘쳐나는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중증의 환자는 많은데 이들에게 줄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의사는 "인공호흡기도 없고 침상도 없다"고 말했다.
CNN은 미국 일부 지역에서 이미 이탈리아 같은 사태가 시작되고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넘쳐나는 코로나19 환자들 때문에 의사들이 불가피하게 의료 서비스를 제한하고 누구에게 인공호흡기를 줄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 장로회·컬럼비아대학 의료센터의 응급의료 국장 크레이그 스펜서는 "우리가 지금 응급실에서 보는 현실은 처절하다"며 "지난주에는 1∼2명의 코로나19 환자가 있었는데 어제 근무 때는 내가 본 환자 거의 모두가 코로나19 환자였다"고 말했다.
스펜서는 "그들 중 다수가 극도로 심각했고 많은 이들이 산소 투여용 튜브를 낀 상태였다. 많은 환자가 금세 부전증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감염자가 3만 명을 넘긴 뉴욕주의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최근 연일 병상·장비·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최근 병원들에 병상을 50∼100% 확대하라고 요청했고 뉴욕시에서는 또 응급병원을 새로 짓고 있다고 밝혔다.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마스크·장갑 등 개인보호장비가 부족하다는 호소는 미 전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4천 개의 인공호흡기에 더해 7천 개를 추가로 조달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국가비축물자에서 확보한 인공호흡기 4천 개를 금주 중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뉴욕주에는 3만 개가 필요하다고 쿠오모 주지사는 말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이번 주 초 추가적인 의료 물자 지원이 없으면 11개 공공 병원들이 이번 주까지만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이미 문 닫은 병원들을 다시 개원해 가동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J.B.프리츠커 주지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기존 병원들을 거의 전적으로 코로나19 병원으로 전환하고 다른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오클라호마주의 병원들도 평균 9.3일치의 개인보호장비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저지·텍사스주 등 일부 주와 미 국방부는 병원들이 필수적이지 않은 수술·치료를 연기하도록 했다.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이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은 세상의 어떤 의료 체계라도 감당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며 충분한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아주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사협회(AMA)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모든 재량권을 이용해 마스크·장갑 등 개인보호장비와 코로나19 검사 키트 부족에 대처하라고 촉구했다.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도 전방위적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전날 은퇴했거나 더 이상 환자를 보지 않는 의사와 간호사 수천 명이 코로나19 대응에 나서겠다며 동참했다고 밝혔다.
또 더 많은 외과의를 더 빨리 의료 체계에 투입하라는 쿠오모 주지사의 명령에 부응해 뉴욕대 그로스먼의대는 졸업반 학생 중 일부를 3개월 일찍 졸업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의대생들을 조기에 의료 현장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미 육군도 은퇴한 의료 인력들에게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자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조지아주는 다른 주에서 온 간호사들에게 신속하게 임시 면허를 발급해주기로 했다.
육군은 중환자 치료 장교·간호사, 마취과 의사·간호사, 응급실 간호사, 호흡기 전문가 등 필요한 주특기를 특정해 전역한 인력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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