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총리 명령이 법률 묵살하는 국가비상사태법 통과
네타냐후 부패의혹 재판 연기…두테르테 예산전용권 확보
요르단·태국 언론통제…NYT "공중보건 미명하 신종 권력남용"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권위주의적 성향 통치자들이 코로나19 방역을 앞세워 권력을 확대할 기회를 얻어가는 형국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30일(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도록 정부 권한을 강화한 이른바 '코로나19 방지법'을 제정했다.
국가비상사태 하에서 오르반 총리는 정부의 명령으로 새 법률을 만들거나 기존 법률의 효력을 없앨 수 있는 무소불위 권한을 지닌다.
헝가리 헌법재판소가 견제 기능을 지니지만 오르반 총리가 이미 충성파들을 대거 배치한 만큼 형식적 기구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당이 반대했지만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여당 피데스가 장악한 의회는 이날 찬성 137, 반대 53으로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헝가리의 비상사태법이 품고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는 일몰조항, 즉 시간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을 문제 삼는 기자에게는 최고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오르반 총리는 의회 표결 직후 코로나19 방지법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균형적이고 이성적"으로 권한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과 인권단체들은 수긍하지 않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 일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우파연합(Jobbik) 피터 자카브 의원은 이번 법안 통과로 헝가리아 민주주의 전체가 격리됐다고 비난했고, 민주연합(DK) 아그네스 바다이 의원은 "지금이 비상사태라는 정부 의견에 동의하지만, 시간을 제한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비드 비그 국제앰네스티 헝가리 국장은 "이번 법으로 오르반 정부가 기한이 없고 통제 불가능한 비상사태를 조성하고,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며 "이것은 코로나19로 야기된 진짜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를 바라보는 국제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대변인은 "모든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코로나19와 맞서싸울 의지가 단호하지만 이번 위기에서 법치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각국 정부가 국경을 폐쇄하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헝가리 총리와 같은 권위주의적인 통치자들의 운신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진단했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자신의 부패 혐의 재판을 연기했고, 정보기관 신베트가 의회 승인이나 법원의 영장 없이 코로나19 확진자의 휴대전화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 비상 명령을 내렸다.
필리핀 의회는 지난 23일 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코로나19 신속 대응과 소외계층 구호 등을 위해 54억 달러에 달하는 올해 예산을 전용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줬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탄압하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요르단 오마르 알 라자즈 총리는 루머, 거짓말,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모든 사람을 "엄중히 처리하겠다"고 밝고, 태국 쁘라윳 짠오차 총리도 언론 검열을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NYT "일부 정부가 공중보건 위기를 내세워 코로나19 발병과는 아무 관계 없는 새로운 권력을 휘두르려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러한 권력 남용을 막으려는 안전장치가 찾아보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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