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서방 동맹 균열 내고 자국 영향력 강화 의도"
"러, 서방 불행을 선전에 활용"…전 IS 격퇴전 특사 "러에 큰 선전기회"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타격을 입은 서방 각국을 지원하고 있다.
1일(미국동부 현지시간)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이러한 행보를 '바이러스 정치'라고 부르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코로나19로 서방 동맹 균열과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을 소개했다.
최근 이탈리아 북부의 코로나19 '핫스폿' 베르가모에 러시아군 전문 인력이 도착해 노령자 거주지를 소독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이들을 호송한 차량에는 러시아 국기가 꽂혀있었으며 "러시아에서 사랑을 담아"라는 문구가 이탈리아어, 러시아어와 영어로 적혀있었다.
러시아는 방역 요원과 더불어 의료진과 의료장비를 실은 일류신(IL)-76 다목적 대형 수송기 9대를 이탈리아로 보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간 지원이 미흡한 상황이라 러시아의 이러한 활동이 더욱 부각됐다.
지난달 초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EU 국가들이 다른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수술용 마스크 등 필수 의료 장비 수출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후 한 달 새 이들 국가가 이탈리아에 장비와 의료진을 지원 규모를 늘리며 상황이 나아졌지만, 이탈리아인 다수가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인식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WSJ은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긴급 지원은 서방 동맹 사이에 균열을 부추기고 자국 위세를 드높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WSJ은 전했다.
벤 호지스 전 유럽주둔미국육군(USAEUR) 사령관은 "서방국들이 서로서로 돕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만들어지도록 놔둔 건 우리 자신"이라면서 "러시아 크렘린궁과 중국 공산당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틈을 메울 기회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빈센조 캄포리니 전 이탈리아군 참모총장은 "러시아가 이 상황을 재빨리 기회로 활용했다"며 "이탈리아의 비극이 선전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한 이탈리아 당국자는 러시아의 지원이 그 자체로는 큰 도움이 안 됐을지라도, 적어도 기존 동맹국들이 지원에 동참하게 하는 데에는 역할을 했다고 꼬집었다.
이탈리아 일간 라 스탐파는 러시아의 의료 지원을 '침공'에 빗대기도 했다.
이에 세르게이 라조프 주이탈리아 러시아 대사는 해당 신문에 서한을 보내 "러시아의 지원이 이탈리아와 나토 동맹국들의 관계를 손상하려는 목적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독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이탈리아 주민들을 누가 어떻게 도와주는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는 외교적 마찰을 빚어온 미국에도 의료물품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날 의료물품을 실은 러시아 군용기가 미국에 도착했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표부는 안토노프-124 군용 수송기가 미국의 최대 코로나 확산지가 된 뉴욕 JFK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래 외교관으로 일하다 지난해 물러난 브렛 맥거크 전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담당 특사는 트위터에 "우리 정부가 지구적 위기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위축되면서 (러시아에) 대박의 선전 기회가 생겼다"고 썼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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