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 조력자' 최재형 순국 100주년…코로나19에 묻혀

입력 2020-04-05 16:05  

'안중근 의거 조력자' 최재형 순국 100주년…코로나19에 묻혀
우수리스크 기념관 코로나19 탓에 문 닫고…기념행사도 연기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형우 특파원 = "밤새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어머니는 우셨고, 아이였던 우리들도 울었다"
1920년 4월 4일 밤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崔在亨·1860∼1920) 선생의 아들인 최 발렌틴 페트로비치는 일본군에 잡혀가기 전날 아버지와 보냈던 마지막 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12살이었던 아들이 잠에서 깨지도 못한 이른 아침 선생은 일본군에 체포됐고 이후 총살됐다.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선생은 몸을 피해야 한다고 간청하는 가족을 오히려 다독였다.
선생의 아들과 딸(최 올가)은 어릴적 '큰 산'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지난해 한국어로도 발간된 '나의 아버지 최재형'에 따르면 선생은 일본군에 체포되기 전 가족들에게 "내가 떠나서 집에 없으면 일본군들이 어머니와 너희들에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며 고문할 것이다. 나는 이제 60이 됐다. 충분히 오래 살았고 죽어도 된다"고 말했다.



최 발렌틴은 "큰 누나가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 아버지(선생)를 태운 일본군의 차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며 "그날 200명이 넘는 한인이 체포됐다"고 기억했다.
한국외국어대 반병률 교수는 과거 자신의 논문인 '4월 참변 당시 희생된 한인 애국지사들'에서 선생을 "러시아 한인사회에서 출세하고 가장 많은 공헌을 남긴 대표적인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이 논문 등에 따르면 선생은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가난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9살 때인 1869년 7월 홍수로 인한 '기사흉년'이 닥치자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 첫 한인 정착지인 연해주 포시에트의 지신허(地新墟·치진헤) 마을로 이주했다.
성인이 된 선생은 러시아군 통역으로 활동하다 군납회사를 차려 지역에서 막대한 부를 일궜다.
1884년 6월 조·러 통상조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귀화한 선생은 그가 번 돈과 구축한 현지인 네트워크는 훗날 연해주 독립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한인 신문 대동공보 사장, 한인 기관 권업회 회장, 대한민국 의회 외무부장,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 등 그는 민족 운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선생은 안중근(1879∼1910)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뒤에서 도운 인물로도 유명하다.
안중근은 거사를 앞두고 최재형의 집에서 지내며 그가 구해준 권총으로 사격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형은 안중근과 그의 동료들이 붙잡혀 재판을 받을 당시 변호사를 알선하려 노력했을 정도로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재형 순국 100주년인 오는 7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도 선생의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우수리스크 옛 고택은 현재 굳게 닫힌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달 러시아 연해주 지방정부가 지역에 있는 모든 전시관과 박물관 등에 대한 폐쇄를 명령했기 때문이다.
사실 폐쇄 명령 이전부터 한국인의 러시아 입국이 금지되면서 방문객 숫자는 급감한 상황이었다.
올해 우수리스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행사는 코로나19 탓에 시기가 대부분 연기됐다.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관계자는 최근 연합뉴스에 "올해 최재형 선생 행사는 오는 6월로 연기됐다"면서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재형 선생의 손자이자 선생의 일대기가 한국에 알려지는 데 크게 기여한 최 발렌틴 발렌티노비치마저 불의의 사고로 지난 2월 14일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 안타까움은 더한다.
선생의 시신은 아직도 수습하지 못했다. 1920년 4월 7일 우수리스크 감옥 뒤편 언덕에서 일본군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는 한인들의 이야기에 따라 그곳에 묻혔다는 추정만 할 뿐이다.
국내에서는 최재형 선생에 관한 내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만 언급됐을 뿐이다.
국가보훈처는 사단법인 최재형 선생기념사업회를 통해 오는 6월 순국 100주년 추모식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vodcast@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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