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지금까지 나온 100조원 규모의 민생·기업 긴급 구제와 연계한 추가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어려움에 처한 수출 기업에 보증과 보험의 만기 연장, 정책금융 등으로 36조원의 무역금융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얼어붙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공공부문의 선결제·선구매,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의 세 부담 경감, 건설·장비 투자의 조기 집행 등을 통한 17조7천억원 규모의 내수 보완방안도 마련했다. 연체 위기에 몰린 개인과 자영업 신용대출자에게 최대 1년간 원금 상환을 미뤄주고,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연채채권 매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나온 대책은 지금까지 정부가 1∼3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발표한 각종 민생·금융·기업 대책에서 빠지거나 소홀했던 부분을 보완해 안전망을 촘촘하게 가다듬은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집행의 속도다. 정책의 온기를 취약계층이나 자영업자, 중소상공인, 기업들이 현장에서 확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도움의 손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계층이나 중소기업 사이에서 정부의 정책 지원을 '그림의 떡'이라거나, '망하고 난 뒤 지원이 무슨 소용이냐'는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은 쓰나미처럼 덮친 보건·경제 복합 위기 상황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집중됐다. 앞으로는 위기의 충격이 어느 쪽으로 쏠리고 전이되는지를 면밀히 살피면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긴요하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이지만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팬데믹의 중심에 있다. 중동과 중남미, 동남·서남 아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웃 일본은 감염자 증가에도 굼뜨게 움직이다 지난 7일에야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국경 폐쇄와 사람·물자의 이동제한 장기화는 치명적 악재다. 관광, 항공, 음식점, 면세점 등에서 시작된 기업 경영난은 정유, 조선, 자동차로 번졌고, 곧 수출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이미 일부 항공사에서 보듯 결국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감원 대신 유급 휴업·휴직을 시행하면서 정부에 손을 벌린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건수는 올해 들어 지난주까지 4만여 건으로 작년 한 해 신청 건수의 26배에 달했다. 따라서 정부의 향후 대응은 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속적 생계 지원과 실업자 대책, 일자리 사수를 위한 기업 경영난 완화 등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정책적 노력에도 환부가 악화할 경우 최후 안전판은 재정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팬데믹이 우리 경제에 가할 충격이 얼마나 크고, 오래갈지 아직 불투명한 상황에서 재정 동원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내놓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제안은 걱정스럽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요구한 국민 1인당 50만원 재난지원금을 실행하려면 26조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제안한 전 가구 100만원 지급엔 13조원이 있어야 한다. 거저 돈을 준다는 데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국채를 찍어서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까지 긴급 지원하는 게 나라를 위한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 한다고 우리가 꼭 베껴야 할 이유는 없다. 결국은 국민 부담이며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재정 건전성의 척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국가부채 비율 40% 선에 발목이 잡혀 취약계층이나 실업자 지원, 시장 안정과 기업 보호, 경기 부양 등 꼭 써야 할 곳에 과감하게 재정을 푸는 것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 일반정부 부채비율 40% 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9%에 비하면 우량 수준이다. 전례 없는 스피드의 저출산 고령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감안할 때 재정건전성을 가급적 고도로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능가한다는 국난을 맞아 GDP의 1%대 수준인 재정(추가경정예산) 출동을 놓고 마치 우리나라가 남유럽이나 중남미의 일부 재정 파탄국처럼 위상이 전락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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