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석탄·모래 등 불법 수출로 5억∼6억달러 수입 추정
'저위험-고수익' 北사이버 달러벌이에 경고음…"정찰총국 주도"
'목적지 위장' 중국 선박, 공해서 한국 선박으로부터 정유제품 환적후 대북 운송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이준서 특파원 = 국제사회 제재를 위반하는 북한의 수법은 더 대담해졌다.
공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 환적하는 기존 방식뿐만 아니라, 직접 항구에서 물품을 주고받는 '직접 운송'(direct delivery)이 크게 늘었다.
대형 바지선으로 중국까지 석탄을 실어나르는 장면도 버젓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연간 50만 배럴의 정유 제품 수입 한도는 사실상 무력화됐고, 전면 금지된 석탄 수출은 활발하게 이뤄졌다. 사치품 밀수, 무기 수출까지 곳곳에서 제재망이 뚫렸다. 북한은 제재망으로 줄어든 외화벌이를 충당하기 위해 사이버 해킹이나 가상화폐 등에 더욱 주력했다.
북한은 작년에 석탄과 모래, 수산물 등의 불법 수출로 5억∼6억 달러 정도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외신이 17일(현지시간) 공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패널 연례보고서는 북한의 다양한 제재 회피 수법을 담았다.
대북제재위의 전문가 패널이 자체 조사·평가와 회원국의 보고 등을 토대로 작성했으며, 15개국으로 구성된 안보리 이사국들의 승인을 거쳤다.
◇ 석탄 수출 8개월간 4천억원대…모래도 100만톤 수출
북한의 석탄 수출은 지난해 1~8월 최소 370만 톤, 3억7천만 달러(약 4천500억원) 규모로 이뤄진 것으로 연례보고서는 평가했다.
1~4월 92만8천 톤에서 5~8월 270만 톤으로 191% 급증했다.
이후에도 석탄 수출은 꾸준히 이뤄졌다.
대북제재위는 지난해 11~12월 남포항 및 송림항에서 석탄 수출이 이뤄지는 장면이 위성사진에 지속해서 잡혔다고 분석했다.
남포항 부두에서 최소 16척, 남포항 일대에서 87척이 포착됐다. 송림항에서는 최소 17척, 송림항 일대에서는 대략 17척이 석탄 수출에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제재위는 "이 기간 전체 화물선은 남포항에서 최소 103척, 송림항에서 최소 34척이 각각 관찰됐다"면서 "중복을 피하면서 보수적인 기준에서, 석탄 선적이 확인된 선박만 집계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강바닥 모래까지 외화벌이에 사용됐다.
지난해 5월 이후로, 최소 100차례 북한산 하천 준설 모래가 중국으로 팔려나갔다. 황해도 해주, 함경남도 신창의 하천 준설로 확보된 모래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 100만 톤, 2천200만 달러어치의 모래가 수출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모래는 2017년 12월 채택된 대북결의안 2397호에 따라 수출 금지품목(HS코드 25번)에 해당한다. 불법 모래 수출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중국 선박으로의 조업권 판매도 계속 이어졌다. 어업면허권 판매도 안보리 제재 위반이다.
지난 2018년 기준으로 1억2천만 달러 규모의 조업권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수치는 따로 제시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한 선원 인터뷰를 토대로, 3개월짜리 조업권이 약 5만7천600달러라고 전했다.
북한의 정유 제품 수입도 연간 50만 배럴인 한도의 3~8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북제재위는 지난해 1~10월 최소 143만 배럴, 최대 389만 배럴의 정유 제품이 수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유조선 선적률을 33%와 50%, 90%로 각각 가정한 결과다.
◇ 남포항서 정유제품 직수입…'자항선' 양쯔강까지 석탄 수출
북한의 불법 수출입에서는 기존의 해상 환적뿐만 아니라 '직접 운송'이 주요 제재 회피 수단으로 떠올랐다.
정유 제품을 선적한 외국 선박은 반복적으로 남포항 수입터미널까지 들어왔다. 연간 한도를 훌쩍 웃도는 정유 제품 수입에서도 외국선박의 직접 운송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0월 외국 유조선의 직접 운송이 총 64차례에 달했고, 이를 통해 북한은 56만~153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입한 것으로 대북제재위는 파악했다.
특히 6~10월에는 북한 유조선보다 외국 유조선의 운송 빈도가 더 높아졌다.
외국 국적 일부 유조선들은 대북 직접 운송에 들어가기 불과 몇개월 직전에 등록지를 변경하기도 했다.
대북제재위는 "북한으로서는 자국 유조선이 '선박 대 선박' 방식으로 소형 선박들과 옮겨싣기 하는 것보다, 외국 선박의 직접 운송으로 수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산 석탄·모래 수출에서 자체 동력을 갖춘 북한 바지선(자항선·self-propelled barges)이 사용됐다는 점에도 대북제재위는 주목했다.
통상적인 벌크선보다도 낮은 구조로, 자체 운항이 가능하다. 북한이 보유한 저항선들은 최소 100m 길이다.
이들 자항선은 국제해사기구(IMO) 등록번호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국 소유 선박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5월 이후로 남포항과 태안항에서 석탄을 실은 중국 소유 자항선들이 곧바로 저장(浙江)성 항저우만(杭州灣)의 항구 3곳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됐다. 양쯔강을 따라 이동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5~8월에는 북한산 석탄 최소 54만 톤이 47차례 걸쳐 수출됐다. 5~9월에는 최소 37척의 서로 다른 자항선들이 중국산 석탄을 실어날랐다.
북한 선박이 중국 항구를 드나드는 장면도 위성에 포착됐다.
작년 10월 10일 중국 닝보-저우산 일대에서 여러 척의 북한 선박이 정박했고, 중국 롄윈강(連雲港) 해역에서도 지난해 9월 15일과 27일 각각 다수의 북한 선박이 석탄 환적을 했다고 대북제재위는 지적했다.
안보리의 한 외교관은 "중국은 영해에 진입한 선박의 제재 위반 여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제재위반을 차단할 능력을 갖고 있지만,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폐선박도 석탄 수출에 동원됐다.
북한 국적 '수리봉'호는 지난해 6월 당시 고철용 폐선 '푸싱(Fu Xing) 12'호를 선박 경매에서 247만 달러(29억 원)에 사들인 것으로, 현재 석탄 수출에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당시 장부가는 80만 달러(9억7천만 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자동식별장치(AIS) 미작동, 해상을 빙빙 도는 배회(loitering), 변칙항로, 서류조작 등 기존의 제재 회피 수법도 여전히 활용됐다.
◇ '목적지 위장' 제3국 선박 간 환적…韓·印 선박, 부지불식간 연루
제3국 선박 간 환적을 거쳐 북한에 정유제품이 공급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선박이 공해상에서 또다른 제3국 선박으로부터 정유제품을 공급받은 뒤, 북한 남포항으로 실어간다는 것이다.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아예 북한 선박은 나서지 않고 정상적인 해상환적으로 가장하는 수법이다.
대북제재위는 "외국 국적 선박끼리 공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 환적하고 나서 남포항으로 직접 운송하는 방식은 비교적 새로운 수법으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선박도 거론됐다.
중국 국적의 '윤홍(Yun Hong) 8'호가 지난해 7~8월 동중국해에서 한국 선박(선박A)으로부터 4차례 정유제품을 환적했다. 이 가운데 3차례는 윤홍8호의 남포항 기항통지(Port call) 며칠 이전에 이뤄졌다.
인도 선박(선박B)도 지난해 9~11월 공해상에서 윤홍8호에 수차례 정유제품을 공급했고, 며칠 뒤 윤홍8호는 남포항에 기항통지했다.
윤홍8호가 유류를 공급받으면서 '유엔이 금지하는 국가나 업체, 선박, 목적지와는 직·간접적으로 거래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서에도 서명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윤홍8호의 최종 행선지(북한)를 쉽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대북 정유제품 공급에 연루된 셈이다.
북한 선박과 직접 환적하지 않은 것이어서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니다. 이 때문에 해당 선박 명칭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제3국 선박 간 해상환적에서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고 대북제재위는 권고했다.
한국 정부는 전문가패널의 문의로 선박A가 연루됐음을 인지했고, 이후 해당 선사를 비롯한 모든 선사들에 의도치않게 간접적으로라도 대북 불법 정유공급에 연루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당부했다.
◇ "北 '저위험-고수익' 사이버 달러벌이 주력"
경고음이 커지는 분야는 북한의 사이버 능력이다. 북한의 사이버 해킹 또는 가상화폐 기술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위한 달러를 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제재위는 "북한은 가상화폐를 지속해서 채굴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면서 "정찰총국(RGB)과 군수공업부(MID) 같은 제재대상 기관들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명목화폐 및 가상화폐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법이 정교하고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에는 '로우 리스크-하이 리턴'(저위험-고수익) 분야라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지난해 4월 북한에서 개최된 '평양 블록체인·암호화폐 회의'에 강연자로 참석한 미국 '가상화폐 전문가' 버질 그리피스는 "행사 주최 측은 가상화폐·블록체인 기술의 제재 회피 적용과 돈세탁에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고 법정 증언했다고 대북제재위는 전했다. 그리피스는 대북제재법인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 혐의로 미 검찰에 기소됐으며, 현재 수감 중이다. 행사 참가비는 베이징-평양 항공편과 숙박·식비·차량을 포함해 1인당 3천300유로다.
북한 해킹조직으로 알려진 라자루스 그룹은 동유럽 사이버 범죄그룹 트릭봇(TrickBot)과 협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올인원 악성코드 공격방식인 일명 '앵커 프로젝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정황도 몇몇 사이버보안업체를 통해 포착된 바 있다.
대북제재위는 "북한 사이버 그룹과 비(非)국가 조직의 파트너 관계가 처음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대북제재위는 특히 사이버 공격을 총괄하는 정찰총국에 주목했다.
특히 2016~2017년 대북제재위(1718위원회)를 겨냥한 일명 '스피어피싱' 공격은 정찰총국의 '김수키'(Kimsuky) 그룹이 주도한 것으로 봤다.
앞서 프랑스 사이버방첩국(ANSSI)도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수키'와 '그룹123'이 안보리 이사국들을 비롯해 복수의 국가기관과 싱크탱크를 공격한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북한의 사이버 수익을 별도로 제시하진 않았다.
지난해 9월 중간보고서에서 "북한 정찰총국(RGB) 산하 121국(해커부대) 등은 지난 2015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최소 35차례 사이버 해킹 공격을 감행해 최대 20억 달러(약 2조4천억 원)를 벌어들였다"고 분석한 바 있다.
◇ 제3세계 군사협력 지속…중고시장 통해 로봇 사들인 듯
북한의 불법무기 거래, 군사협력 역시 이번에도 거론됐다.
대북제재위는 북한 무기수출업체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의 이란 현지 활동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KOMID는 2015년 이후로 '221 총국'(General Bureau)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고됐다.
최소 지난 2009년 이후로, 이란에 주재하는 북한 당국자가 두바이-테헤란 공항 간 외교채널을 통해 금괴·현금 밀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왔다고 대북제재위는 지적했다.
그밖에 북한의 콩고민주공화국 금광 개발 개입, 에리트레아·미얀마·베네수엘라와의 군사협력 등도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스위스계 다국적기업 'ABB'가 생산한 로봇기계류 3대가 북한에 유입된 경로에 대해서도 대북제재위는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ABB 측은 "2017년 4월 17일부터 2018년 11월 사이에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IRB 600' 모델"이라며 "수백 대가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됐고 대부분은 중국 측에서 주문이 이뤄졌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해당 모델이 북한으로 유입된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통상 중고 로봇을 거래하는 상당한 2차 시장이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1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월25일 수산사업소'와 '통천물고기가공사업소'를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는 ABB사의 로고가 부착된 로봇 제품이 포착됐다.
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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