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전쟁터"…남아공 흑인밀집지구, 장기 봉쇄령에 식량위기

입력 2020-04-19 00:50  

"여긴 전쟁터"…남아공 흑인밀집지구, 장기 봉쇄령에 식량위기
"배고파 가게 털고 사람 공격…폭력과 약탈 임계점 도달"
경찰 간부도 "술담배 단속보다 식량 우선 공급해야"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대통령님, 우린 식량 위기 한가운데 있습니다. 여긴 전쟁터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근처 흑인밀집지구인 미첼스 플레인 타운십에서 지역사회 리더로 활동하는 조아니 프레데릭스는 1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올린 동영상에서 이같이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프레데릭스는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5주간의 록다운(lockdown·봉쇄령) 때문에 "사람들이 가게에 침입하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단순한 이유는 배고프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음식을 요리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35일간의 봉쇄령이 4주 차에 들어가면서 가난한 지역사회는 식량 부족에 직면했다. 날품팔이 등 비공식 부문 근로자들의 수입이 거의 끊겼기 때문이다.
군경을 동원해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봉쇄령은 그러잖아도 현금에 쪼들린 시민들을 더 쪼들리게 만들었다.
프레데릭스와 같이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자선 식품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프레데릭스는 처음에 어린이, 장애인, 연금수령자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음식을 나눠줬지만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 빈손으로 보낼 때가 있다며 눈물 어린 호소를 했다.
당국에서 배급하는 식량 꾸러미를 놓고 이미 몇 건의 폭력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미첼스 플레인에서도 식량 꾸러미가 제대로 배달되지 않자 수백 명의 성난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 돌을 던지고 불타는 타이어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해산을 시도했다.
사회 평론가들은 이 같은 폭력적 양상이 격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웨스턴케이프대학의 식량안보우수센터의 줄리안 메이 국장은 "우리 중 많은 이는 (봉쇄령에) 집에서 살이 찌지만 진짜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도 많다"면서 "이는 남아공의 불평등에 대해 잘 웅변해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음식 꾸러미를 받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받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반응하기 시작한다. 빈곤지역 사람들에게 음식 배급을 보다 신속히 하지 않으면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에 속한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 5천700만의 남아공에서 전체 기구 중 20%는 음식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

봉쇄령이 극빈층에 미치는 충격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싱크탱크 남아프리카식량연구소의 스콧 드리미는 "매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아공은 이미 물과 주택 위기 같은 기초 문제 때문에 시위가 잦은데, 여기에 배고픔까지 더해졌다는 것이다.
빈곤토지농업연구소(PLAAS)는 사람들이 식량을 못 구하면 대규모 약탈 같은 폭력적 갈등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아공 경찰의 한 고위간부도 17일 현지매체 뉴스24에 식량 공급에 대한 절망감이 전국 거리와 상점으로 파급되면서 시위와 약탈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그는 베헤키 첼레 경찰장관이 봉쇄 기간 술과 담배 판매 금지 단속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며,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 진짜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돈이 없고 배가 고프다. 범죄율이 치솟을 것이다. 우린 코로나바이러스로 죽는 사람보다 굶어 죽는 사람이 더 많을까 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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