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관통하는 입체도로?…떠들썩하게 발표하곤 '흐지부지'

입력 2020-04-22 06:11  

건물 관통하는 입체도로?…떠들썩하게 발표하곤 '흐지부지'
미래도시 청사진 제시후 도입 논의 중단…법안도 조만간 폐기 운명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정부가 3년여 전 건물 중간을 관통하는 고가도로 등 '입체도로'를 도입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으나 여러 이유로 흐지부지 포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22일 국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 부처 내에서는 입체도로 도입과 관련한 논의가 중단된 지 오래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수년 전 발의된 '도로법'이나 '도로공간의 입체개발에 관한 법률' 개정·제정안은 상임위에서 제대로 된 논의도 이뤄지지 못하고 조만간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운명이다.

앞서 2017년 2월 국토부는 입체도로 도입 방안을 담은 '도로 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통한 미래형 도시 건설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신산업규제혁신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내용이 발표됐다.
공공 용도로만 개발을 제한했던 도로 부지를 민간에 개방하고 도로 상하부에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도로를 지하화하고 상부에 주거지를 조성할 수 있고 도로와 일체화된 건물도 지을 수 있다. 도로 상하부에 다양한 건물을 넣을 수 있어 말 그대로 미래도시의 모습이 구현된다.
당시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집중적으로 홍보했고 이에 화답하듯 입체도로를 도입하는 법안도 국회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 내부 기류가 변했다고 한다.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하긴 했지만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있다는 말이 있듯 각론에서 현실성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입체도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 했으나 도로 위아래 공간의 소유권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보상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로 입체도로를 지었을 때 건축공학적으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고 말했다.
광역급행철도(GTX) 추진도 한 변수가 됐다.
입체도로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GTX를 3곳이나 추진하다 보니 입체도로는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다른 관계자는 "입체도로는 지금으로선 검토하지 않는 상태"라며 "이를 추진하기에는 동력이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법률과 제도로도 입체도로를 조성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7년 말 고속도로 위에 시흥하늘휴게소가 건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어차피 도로에 공공건물을 얹은 것이라 정부가 추진한 민간 건축물과 도로가 어울리는 입체도로와는 차이가 크다.
일본은 이미 30여년 전인 1989년 도로법 등을 개정해 도로일체형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입체도로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도쿄 아사히신문 사옥 건물 사이로 도로와 철도가 지나고 오사카 TKP 건물은 고가도로가 완전히 관통하는 구조로 돼 있어 유명하다.

우리나라가 과연 일본에 제도적·기술적으로 30년 뒤진 것인지, 아니면 전 정권에서 발표된 정책이라 정부의 관심이 멀어진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한때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큐브하우스, 일본 도쿄 토라노몬 힐즈 등 입체도로를 활용한 첨단도시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라고 홍보하며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벌이기도 했다.
입체도로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실의 관계자는 "이번 회기 내에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다시 나올지도 불투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서울시는 북부간선도로 신내나들목 일대를 덮고 그 위에 공공택지(신내컴팩트시티)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입체도로와는 큰 상관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택지엔 분양이 아닌 공공임대만 지을 예정이기에 권리 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라며 "이 사업은 입체도로와는 성격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bana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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