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친구, 독일은 적'…코로나19가 바꾼 이탈리아인 인식

입력 2020-04-21 22:07  

'중국은 친구, 독일은 적'…코로나19가 바꾼 이탈리아인 인식
코로나19 속 EU에 실망한 이탈리아…국민 절반 "EU 탈퇴 찬성"
비상시국서 지원 외면한 EU에 대한 반감 반영…"불확실성 커져"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인명피해를 본 이탈리아에서 'EU(유럽연합) 무용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컨설팅업체 '테크네'(TECNE)가 최근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EU 탈퇴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49%에 달했다.
이는 2018년 말 같은 조사에서 나온 수치보다 20% 포인트 높은 것이다.
당장 이탈리아에서 EU 잔류-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한다면 회원국 유지를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조사 결과다.
이 업체가 시행한 지난달 말 조사에서도 EU에 속해 있다는 게 이탈리아에 불리하다는 응답 비율이 67%로, 2018년 조사 때보다 20%포인트 급등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코로나19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상시국에서 EU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바이러스 확산이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달 EU의 주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마스크와 같은 개인 보호 장비 수출을 금지해 이탈리아인들로부터 서운함을 샀다.
또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코로나19로 이탈리아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 등 서방권에서 다소 적대시하는 국가들이 이탈리아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EU의 빈자리를 메웠다.
실제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대부분의 이탈리아인이 중국을 '친구'로 묘사한 반면에 독일을 '적'으로 규정한 응답은 조사 대상의 절반에 달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EU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주세페 콘테 총리마저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고자 제안한 EU 공동 채권 발행이 독일·네덜란드 등의 반대에 부딪혀 답보 상태에 빠지자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EU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파리정치대학의 마크 라자르 역사학 교수는 "이탈리아는 EU의 이상과 사랑에 빠졌다가 지금은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며 "유럽이 이탈리아인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짚었다.
이탈리아는 1957년 당시 서독,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로마 조약'을 체결하고 EU의 모태가 된 유럽 경제 공동체를 설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가 올 1월 '브렉시트'를 단행한 영국처럼 당장은 EU 탈퇴를 실현하기 쉽지 않겠지만 정치적으로는 그 싹이 이미 트인 상황이어서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다.
현재 이탈리아 정치 정당 가운데 굳건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정당 '동맹'의 존재가 이를 방증한다.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은 과거에도 공공연하게 EU 탈퇴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최근 코로나19 비상시국에서 EU가 이탈리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주저하며 반감의 대상이 되자 "일단 바이러스 사태를 극복하고 나서 EU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며 "(EU 탈퇴가) 도움이 된다면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작별을 고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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