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만 최단기록, 질문도 '패스'…"브리핑 도움 안 된다는 것 깨달아"
내부서 회의론 확산 속 이번 일이 '결정타'…'코로나19 리얼리티TV쇼' 기로에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을 22분 만에 끝내고 퇴장했다. 지난달 중순 브리핑 시작 이후 한달여만에 최단 시간 기록이다.
전날 브리핑에서 불쑥 꺼낸 '살균제 인체주입 치료' 발언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확산한 와중에서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브리핑 중단 요청이 계속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브리핑 참석을 축소할 것이라는 미 언론 보도가 나오는 등 이번 발언 파문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리얼리티 TV쇼'가 갈림길에 서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 40분께 시작한 코로나19 TF 브리핑에 평상시처럼 참석했지만, 자신의 인사말에 이어 스티븐 한 식품의약국(FDA) 국장,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별도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고 22분만에 자리를 떴다. 질문하기 위해 자신의 등에다 대고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를 연신 외치는 취재진을 뒤로하고서다.
평소 1시간에서 많게는 2시간여에 걸쳐 브리핑을 진행하던 것에 비하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날 브리핑에는 TF의 '간판'격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과 데비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로버트 레드필드 국장 등 단골 인사들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몇 주간은 2시간을 넘나드는 '트럼프 쇼'가 연출됐지만, 살균제 발언 역풍으로 힘든 하루를 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질문을 받지 않고 브리핑장을 떠나는 극히 이례적인 행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살균제 발언을 둘러싼 십자포화로 인해 언짢은 상태라고 소식통 발로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치료와 관련, 살균제 주입과 자외선 노출을 검토해보라는 식의 돌발발언을 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했다.
결국 이날 낮에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비꼬는 투로 질문한 것"이라며 말 바꾸기를 시도하며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 스타일의 '코로나 19 리얼리티 TV쇼'의 후과를 톡톡히 치르게 된 가운데 앞으로 브리핑 참석 횟수 및 방식 등에 변화를 가하는 쪽으로 내부 검토가 이뤄지는 분위기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이날을 시작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TF 브리핑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내부 논의에 정통한 4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음 주부터는 매일 브리핑룸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브리핑에 참석하더라도 짧은 시간 등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백악관 내부와 외곽의 최측근 참모 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라톤 브리핑을 중단할 것을 촉구해왔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과도한 노출이 대선 맞상대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 밀리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 참모는 악시오스에 "나는 그에게 브리핑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위 인사들은 겁에 질려있다. 그리고 그가 언론과 싸우는 장면은 국민들이 보고 싶어하는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다른 고위 당국자는 "기술적 내용의 브리핑은 다른 인사들에게 맡기고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를 발표하는 경우에 한해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브리핑 참석 축소 논의는 살균제 발언 파동이 있기 전부터 진행돼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브리핑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분명해졌다고 악시오스가 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다만 한 소식통은 이와 같은 결정은 최종적으로 정해질 때까지는 결코 최종이 아니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CNN도 참모들과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일일 브리핑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득이 되기보다 독이 된다는 판단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일 브리핑을 그만두도록 하려는 합심 된 시도가 있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와 관련, 한 백악관 당국자는 지난주 일일 브리핑 중단 요청이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CNN에 전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정상적인 대선 캠페인이 올스톱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빠짐없이 브리핑에 참석하며 사실상 대선 유세의 장으로 활용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TF 브리핑은 정확한 정보 및 전망 제시, 국난극복의 의지 표명과 통합의 장이 되기보다는 말라리아약의 코로나19 치료 효능 극찬 등 입증되지 않은 주장의 반복과 보건·의료 당국자들과의 여과 없는 불협화음 노출, 기자들과 잦은 설전 등으로 점철되면서 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싼 행정부 난맥상의 '축소판'이라는 비판적 평가에 직면해왔다.
이 때문에 친(親)트럼프 진영 내에서도 "브리핑을 그만하라", "전문가들에게 마이크를 넘겨라"는 등의 고언이 이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높은 시청률'을 들어 그동안 마이웨이를 고수해온 셈이다.
그러나 한때 취임 후 최고치를 찍었던 국정 지지율이 4월 들어 계속 떨어지면서 일일 브리핑에 대한 내부 회의론이 확산하던 중 이번 일이 결정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보인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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