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통화량 급증에 증시로 자금 쏠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요즘 만나면 모두 주식 얘기 뿐이다"
테헤란 시민 거세미 씨는 최근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증시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란 테헤란 증시(TSE)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관심을 끈다.
5일(현지시간) 테헤란 주식시장에 따르면 4일 종가 기준 TSE 지수는 979,105로 한 달 전 566,361에 비해 1.7배나 올랐다.
지난해 같은 날(223,716)과 비교하면 무려 4.4배에 달한다.
이란 경제가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저유가 때문에 중동 산유국 전체의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터라 테헤란 증시의 급등세는 의외의 현상이다.
최근 이란 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주식 거래 계좌를 개설하려고 이른 아침부터 증권회사 앞에 줄을 선 시민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많이 게시됐다.
이를 두고 이란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란 통화시장의 유동성이 지난해 매우 증가했음에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자금이 증시로 쏠리고 있다는 데 대체로 모인다.
2018년 11월 재가한 미국의 제재로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급락하고 물가가 빠르게 오르자 이란 국민은 자신의 리알화 자산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 자산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란 국민의 주요 투자처는 금, 부동산, 미 달러화, 자동차, 주식 등이다.
이 가운데 최근 2년간 금과 부동산, 자동차의 가격이 오를 대로 올라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은 데다 이들 자산에 투자하려면 목돈이 필요해 서민이 사놓기에는 부담스러워졌다.
미 달러화는 이란 금융 당국이 외환 시장 안정과 외화 유출을 막으려고 환전 한도를 1인당 연간 2천 달러로 묶었고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최근 환율이 안정된 편이어서 기대 이익이 적어졌다.
이에 이란 국민의 자금이 증시로 대거 몰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중에 유동성이 커진 것은 재정 적자를 메우려는 이란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경기 침체로 재정이 감소하지만 저소득층 보조금 등 공공 지출을 줄일 수 없어 생긴 재정 적자폭이 커진 이란 정부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무릅쓰고 리알화를 찍어내는 방법으로 통화량을 계속 확대했다.
2월 9일 이란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0개월간 이란의 유동성은 28% 증가했다.
물가 상승과 자국화 가치 하락이라는 부작용에도 이란 정부가 통화량을 늘린 데 대해 중동 전문 매체 알모니터는 "원유 수출이 부진해진 이란은 환율을 높여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라며 "이는 이란 정부가 추진하는 자국 산업 육성과 같은 맥락이다"라고 해설했다.
시중 유동성이 과잉되자 이란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최대한 억제하고 유동성을 해소할 돌파구로 '주식 붐'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정부는 원유 수입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올해 정부가 보유한 우량 자산 37억 달러 규모를 주식, 채권 시장에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는 일반 투자자에게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파르하드 데즈파산드 이란 재무·경제 장관은 2월 "미국의 부당한 제재를 받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의 자산은 성장의 지렛대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테헤란 주가지수 급등의 출발점이 지난해 말 이란 최고지도자의 '봉인 해제' 발언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슬람 율법은 도박을 중죄로 규정하는 탓에 이슬람권에서는 주식 투자도 도박의 일종으로 보는 보수적 관점이 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꺼리는 정서가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는 지난해 11월 24일 이에 대해 "이란 국민은 국산품을 애용해야 한다"라며 "이란 기업이 활발해지려면 주식시장과 같은 생산적인 투자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고 연설했다.
이후 이란 종교계의 자금이 주식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테헤란 주가지수 흐름을 보면 실제로 이때부터 상승세가 확연해졌다. 최고지도자의 이 연설 이후 5개월간 테헤란 주가지수는 3배로 껑충 뛰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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