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주 한국산 진단도구 공수 등 각자도생…연방정부 가로챌까 군경까지 배치
대공황 거치며 힘 세진 연방정부, 코로나19서 준비부족 드러내고 트럼프 기름부어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미국 메릴랜드주가 지난달 18일 한국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도구를 공수할 때 공항엔 주방위군과 주경찰이 깔렸다.
래리 호건 주지사가 언론에 털어놓은 데 따르면 어렵사리 확보한 진단도구를 연방정부가 가로채거나 빼돌릴 수 있다는 게 군경 배치의 이유였다. 연방정부의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 항공기의 도착지도 바꿀 정도였다.
코로나19 위기로 어느 때보다 긴밀한 협력이 이뤄져도 모자란 판에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긴장과 균열이 상당하다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사건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코로나19 위기 국면에 연방정부의 준비 부족이 드러나면서 주정부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그간 유지돼오던 권한의 균형이 뒤집힌 미국의 상황을 상세히 짚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주정부가 주로 부차적인 역할을 했지만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연방정부가 좀처럼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가운데 주정부가 주도적 역할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WP에 따르면 미국은 건국 당시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동시에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데도 중점을 뒀다.
미국 헌법에 '연방주의(Federalism)'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견제와 균형은 미국의 운영에 있어 핵심적 요소가 돼 왔다.
연방주의에 따라 각 주에서는 주마다 처한 경제적·문화적·지정학적 현실에 맞는 해결책을 도모할 수 있었다. 각 주가 역내의 사실상 모든 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갖고 있었다는 게 개리 거스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의 평가다.
각 주에 재량권이 상당했기 때문에 천차만별의 제도가 등장했다. 애비 글럭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WP에 "연방주의에는 미 전역에 엄청난 불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남부지역의 인종차별 역사가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의 권한이 약해지고 연방정부의 힘이 커졌다. 연방정부가 주들 사이의 통상을 규제할 수 있게 한 헌법 조항이 근거가 됐다.
특히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으로 대공황 대응 전면에 나서면서 연방정부의 권한이 한층 강화됐고 이러한 기조가 이어졌다.
앨리슨 라크루아 시카고 로스쿨 교수는 "20세기는 연방주의의 모든 것을 재구성한 뉴딜의 이야기"라며 "연방 차원의 통상권한 확대는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주정부가 연방정부의 공백을 메우며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연방정부가 각 주에 필요한 의료장비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사이 메릴랜드주가 따로 한국 측과의 협상에 나서 50만회의 검사가 가능한 코로나19 진단도구를 확보한 것이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내놓고 주지사들을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한편 '살균제 주입법'이라는 충격적 방식까지 제안하면서 혼란을 키운 탓도 컸다.
WP는 "올봄 주정부가 전국적 수준의 결함을 메우는 데 나서게 되면서 권한의 균형이 뒤집혔다"면서 "연방 차원의 결함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쟁력 부족을 보여줬으며 허위주장을 하고 주지사를 공격하는 대통령과도 뒤섞였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소속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연방정부에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 리더십이 거의 없다"면서 "위기를 맞았던 과거 대통령 모두는 연방정부의 중요성과 권한이 나라를 승리를 향한 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걸 이해했다. 지금 대통령한테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주정부의 권한이 연방정부에 비해 제한적이라 코로나19 같은 위기에서는 연방정부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한 상황이다. 민간에 전략물자 생산을 지시할 수 있는 국방물자생산법 발동 같은 건 연방정부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nar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