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에 폭탄 싣고 다녔던 프랑스 여성 레지스탕스 대원 별세

입력 2020-05-10 01:13  

유모차에 폭탄 싣고 다녔던 프랑스 여성 레지스탕스 대원 별세
세실 롤탕기 여사, 승전 75주년 기념일인 지난 8일 101세로 타계
남편 롤탕기 대령과 함께 나치 상대 무장투쟁…1944년 파리 봉기 주역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프랑스가 점령됐을 때 레지스탕스 대원으로서 남편과 함께 파리 봉기를 주도했던 세실 롤탕기 여사가 지난 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1세.
9일(현지시간)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롤탕기 여사는 지난 8일 프랑스 중부 몽토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롤탕기 여사가 별세한 이날은 2차대전에 참전한 연합국이 유럽 전선에서 승리한 지 꼭 75년이 되는 날이었다.
롤탕기 여사는 17살이던 1936년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산하 금속노조연맹에 타이피스트로 일하기 시작한 뒤 남편 앙리 탕기(롤탕기 대령·2002년 별세)를 만났다.
프랑스공산당(PCF) 당원으로 노동운동가였던 남편은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독재자 프랑코의 군대에 맞서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부상해 돌아왔다. 남편은 이때부터 전사한 친구 테오의 성(姓)을 자신의 이름에 넣어 '앙리 롤탕기'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둘은 곧 결혼했지만 2차대전 발발 직전 군에 징집된 남편은 감감무소식이었고, 롤탕기 여사의 부친은 노동운동을 이유로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7개월 된 아들까지 병으로 죽자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린 롤탕기 여사는 이내 마음을 추스른 뒤 비밀 항전조직 레지스탕스의 문을 두드렸다.
첫 임무는 나치 치하의 프랑스 국민들에게 독일에 대한 결사 항전을 촉구하는 선전문서를 타자기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롤탕기 여사의 대표적인 활약은 나중에 남편을 다시 만나 무장해방 레지스탕스조직인 프랑스내부군(FFI)의 연락장교로 활동한 것이었다.
나치 점령기에 두 자녀를 더 낳은 롤탕기 여사는 파리에서 유모차에 총기와 폭탄, 비밀 지령을 담은 문서를 몰래 싣고 다니며 임무를 수행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1944년 8월 남편 롤탕기 대령이 FFI의 파리 지역 사령관일 때 파리 시내에 지하 벙커를 세우는 작업을 도왔다. 파리 14구에 남아있는 이 지하 벙커는 '파리해방박물관'으로 탈바꿈해 현재도 일반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1944년 8월 19일 파리 시민들에게 무장봉기를 촉구하는 선전 팸플릿을 작성해 뿌린 것도 롤탕기 여사였다. 그녀는 이 팸플릿에서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애국자여, 프랑스가 촉구한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라고 적었다.
파리 시민들의 무장봉기와 이후 이어진 연합군의 진격으로 6일 후 파리는 나치 치하에서 해방됐다.

롤탕기 여사는 1944년 8월 26일 항독 망명정부인 '자유프랑스'(France Libre)의 지도자였던 샤를 드골 장군이 샹젤리제 거리에 입성한 뒤 파리의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위해 주최한 연회에 유일하게 여성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1984년 프랑스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레지스탕스와 파리 해방의 여성 주역 세실 롤탕기 여사가 연합군이 나치를 상대로 승리한 지 꼭 75년이 되는 날 영면하셨다. 이 자유의 투사께 존경을 표한다"며 애도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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