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씁쓸한 귀향…탈출 때만큼 '가시밭길'

입력 2020-05-15 00:58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씁쓸한 귀향…탈출 때만큼 '가시밭길'
생존 위해 고국 등진 이민자들, 코로나19에 눈물의 귀국
에콰도르·칠레서 귀국 원하는 베네수엘라인들 대사관 앞 노숙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중남미 곳곳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 속속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마지못해 오른 귀향길도 생존을 위해 감행했던 힘겨운 탈출만큼이나 험난하다.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 콜롬비아 이민당국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기간 5만2천 명 이상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자진해서 베네수엘라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남은 이민자 중에서도 귀국 의사를 밝힌 이들이 있다고 당국자는 덧붙였다.
오랜 경제난과 정치·사회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최근 몇 년 새 500만 명 가까운 국민이 고국을 등졌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탓에 최저 월급으로는 계란 한 판도 못 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이민이었다.
이웃 콜롬비아에 가장 많은 180만 명가량이 정착하고 에콰도르, 페루, 칠레 등 나머지 남미 국가에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삶은 이민 전과 다를 바 없어졌다.
대부분 이민자가 일용직이나 노점상 등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봉쇄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베네수엘라에 남은 가족들에게 보낼 돈은커녕 집세 낼 돈도 없어 쫓겨나는 경우가 잇따랐다.

결국 많은 이민자가 굶더라도 고향에서, 가족 곁에서 굶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귀국을 택한 것이다.
콜롬비아의 경우 정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국경을 열어주고 버스도 제공해 육로 이동이 가능했지만, 더 먼 나라에 있는 이민자들은 귀국도 쉽지 않다.
14일 EFE통신은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베네수엘라 대사관 앞에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백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노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콰도르 과야킬이나 페루에서 여러 날 동안 도보로 온 이들도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자국 이민자들을 위해 보내는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대사관은 EFE에 지난주 두 대의 비행기가 베네수엘라인들을 실어날랐다고 전했지만, 다음 비행기가 언제 뜰지는 기약이 없다.
칠레 산티아고에 있는 베네수엘라 대사관 밖에도 300명 가까운 베네수엘라인들이 일주일 넘게 진을 치고 있다고 AP통신은 최근 전했다.
일부는 텐트도 없어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대사관이 귀국길을 마련해주길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민자 자나 비야는 AP에 "일자리도 없고 집세를 낼 방법도 없다.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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