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양 씨 개포4단지 조합장 당선…"소통 효율화 방안 고민"
정부 정책에 쓴소리도…"왜곡된 도시정비사업 생태계 회복해야"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상식을 아는 조합장이 되겠습니다. 소통은 조합장의 필수 덕목이자 주요 업무라고 생각해요. 소통의 효율화 방안을 고민할 것입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개포프레지던스자이) 조합의 새 조합장으로 선출된 윤석양(54) 씨는 20일 연합뉴스에 청렴한 조합장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윤 조합장은 1990년 국군 보안사령부(보안사)가 정치계, 노동계, 종교계, 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총 1천303명을 불법 사찰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보안사에 입대한 윤석양 당시 이병은 서빙고 분실에서 운동권 명단 자백을 강요당하며 고문당했고, 대공·학원 사찰 임무를 부여받았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윤 이병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증거물을 들고 탈영해 양심선언을 했다.
보안사 사찰 대상에는 주요 정치인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포함된 사실이 확인됐고, 보안사가 학생·민간인 정보 수집을 위해 서울 관악구 신림본동에 위장 술집까지 운영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큰 충격을 안겼다.
결국 정권퇴진운동으로까지 이어지자 당시 노태우 정부는 서빙고 분실을 폐쇄하고 보안사의 명칭도 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로 변경했다.
사찰을 폭로한 뒤 2년간 도피 생활을 하던 윤 이병은 1992년 기무사에 붙잡혀 군무이탈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출소한 뒤인 1995년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윤 씨는 대학교에 복학해 졸업한 뒤 직장을 얻었고 결혼도 했다.
윤씨는 "내게 그 일(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은 죄의식과 부채감의 발로였는데, 많은 이에게 대단한 용기로 비쳤다"며 "때로는 비겁했으나 때로는 용감한 게 나였다"고 담담히 말했다.
등산과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그는 대모산과 양재천 사이에 낀 개포주공4단지 아파트 한 채를 2006년 매입했다. 1주택자인 윤씨는 현재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전세 세입자로 거주하고 있다. 조합장에 당선되고 조합 사무실 출퇴근에만 왕복 네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공익 제보자로서 이름을 떨쳤던 그가 30년의 세월이 흘러 강남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에 도전한 계기는 뭘까.
"조합장이 돈만 먹지 않아도 그 조합은 시공사와의 관계에서 갑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조합이 갑이 되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제가 조합장이 되면 우리 조합은 바로 갑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어요."
지난 16일 열린 조합장 선출 총회에서 윤씨는 행사 참석 조합원 2천111명 가운데 55%(1천154명)의 득표율로 새 조합장에 당선됐다.
조합장 자리를 놓고 경쟁한 다른 네 후보는 전·현직의 대형 건설사 및 대기업 종사자, 고위 공무원, 건축 분야 기술자 출신이다. 반면, 윤 조합장은 건설·건축 경력이 전혀 없는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 조합의 한 조합원은 "강남아파트 재건축 조합에서 도시정비사업 관련 경력이 전무한 운동권 출신의 조합장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이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이라며 "조합원들의 재산권을 보호해줄 청렴한 리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지난 2월 전임 조합장을 24년 만에 해임했다. 과도한 공사비로 가구당 수천만 원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하고,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윤 조합장은 "나는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자"라며 "(조합원들이) 좋은 집을 갖게 하기 위한 우선순위를 절대 혼동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 일변도인 정부의 도시정비사업 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했다.
"3만원짜리 밥을 먹고 싶은 사람과 라면을 먹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정부가 비싼 밥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재개발·재건축을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도시정비사업의 왜곡된 생태계를 바로잡는 일이 시급합니다"
재건축 동반자인 시공사에 대해서는 불만을 드러냈다. 계약서상으로는 조합이 갑이고 시공사가 을이지만 현실에서는 갑을관계가 거꾸로 되면서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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