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눌러죽인 미국경찰 만행 배후엔 '공무원 면책' 적폐(종합)

입력 2020-05-30 20:47  

흑인 눌러죽인 미국경찰 만행 배후엔 '공무원 면책' 적폐(종합)
돈 훔치고 임신부 때려도 면죄부…"인종차별 도구로 악용"
대법관 "위헌적 경찰 보호막"…문제 경찰관도 상습 권력남용 의혹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미국 경찰관은 왜 시민들이 보고 말리는 와중에도 무려 9분 동안 비무장 흑인을 무릎으로 눌러 사망에 이르게 했을까.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3분이나 지속한 이 같은 가혹행위를 두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수사기관들에 자리잡은 '공무원 면책권'을 적폐로 지목했다.
29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25일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경찰관 데릭 쇼빈이 3급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를 받게 된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찰은 일반 시민이었다면 법의 심판을 받았을 행위를 해도 기소되는 경우가 드물다"라며 "경찰은 '공무원 면책권' 원칙에 따라 일정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인들은 연방법에 따라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공무원을 고소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은 1967년 판결에서 '선의'로 인권을 침해한 공무원들에겐 면책권이 부여된다고 최초로 명시했다.
공무원들이 자신의 소관인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송을 당하는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다.
대법원은 2015년 이 원칙에 대해 구체적인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공무원들은 "상식적인 사람이 알만한, 명확히 수립된 법적,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공무 중 행위와 관련해 기소되지 않는다는 게 그 골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명확히 수립된'이라는 개념이 '상식적인 사람이 알만한'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압도하면서 경찰들이 과도한 면책권을 누려왔다.
일례로 2013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선 경찰관들이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를 받는 피의자 2명의 집을 수색하다가 20만 달러를 넘게 훔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경찰의 절도 혐의가 인정된다면 이들은 당연히 '비합리적 수색과 체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수정헌법 4조를 위반한 격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경찰이 영장에 의해 몰수한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두고 수정헌법 4조를 위반했다고 적시하는 '명확히 수립된 법'이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2004년에는 경찰이 교통위반 딱지 서명을 거부한 임신 7개월 여성을 11세 아들이 보는 앞에서 차에서 끌고 나와 테이저건(전기충격총)을 1분 안에 3차례나 쏜 일이 발생했다.
이 여성도 경찰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경찰의 행위가 '명확히 수립된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수정헌법 4조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소니아 소토마요르 미국 대법관은 공무원 면책권에 대해 "수정헌법 4조의 억제 효과를 완전히 파괴해 경찰에게 완벽한 보호막이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시민자유연합(ACLU) 등 자유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뿐 아니라 보수 기독교 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이 대법원에 공무원 면책권 원칙을 재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거리로 나선 시위대도 경찰이 누리는 공무원 면책권 원칙이 유색인종을 겨냥한 차별을 부추기는 제도적 장치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번에 흑인 시위를 촉발한 경찰관 쇼빈은 19년 복무 기간에 상습적으로 공권력을 오남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WP는 쇼빈이 용의자를 총으로 쏜 것이 최소 두 차례이며 그 가운데 한 명은 숨졌다고 경찰 기록과 과거 언론 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쇼빈은 근태 불량부터 과도한 공권력 행사까지 17차례 고소·고발을 당했으나 견책을 받은 1차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WP는 경찰이 세부내용 공개를 거부해 해당 사건들의 정확한 성격이 파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young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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