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호기로운 '군 동원' 엄포…결국 군 반발 불렀다

입력 2020-06-05 01:28   수정 2020-06-05 07:13

트럼프의 호기로운 '군 동원' 엄포…결국 군 반발 불렀다
'예스맨' 에스퍼 장관 반기 들고 발언 삼가던 매티스 전 장관도 맹비난 성명
시위확산 국면서 트럼프 정치적 행보에 군 끌려들어가자 군내 반발기류 확산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군을 동원해서라도 미 전역에 불붙은 시위
를 진압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언이 군에 제대로 역풍을 부른 모양새다.
'예스맨'인 현직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데 이어 발언을 삼가던 전직 국방장관도 가차 없는 성명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 국면을 정치적 대결로 몰아가며 군을 이용하려 드는 데 대한 반발이 전·현직 국방장관의 행보에 집약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미 전역에서 시위가 격화하는 걸 예의주시하던 군을 부글부글 끓게 만든 건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1일 회견이다.
주지사들이 주방위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군병력을 동원해 진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응과 이에 따른 경제적 타격으로 코너에 몰린 판국에 시위 확산이라는 추가적 위기에 봉착하자 군을 동원해서라도 돌파하겠다는 정치적 노림수를 노골적으로 밝힌 셈이다.

대통령이 시위진압에 군을 동원하려면 폭동진압법을 발동해야 하는데 당시 시위가 격화 양상을 보이기는 했으나 군까지 동원할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회견 직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백악관 앞 교회를 찾아 카메라 앞에 서면서 군내 반발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기독교인 지지층 결집 메시지가 다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이벤트에 현직 국방장관이 들러리를 선 꼴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방문에는 마크 밀리 합참의장까지 동행했는데 이때 대통령 동선 확보를 위해 평화 시위대를 강제 해산, 논란이 배가됐다.

다음날 국방부 정책차관을 지낸 제임스 밀러가 국방과학위원회 위원직을 내던졌다. 에스퍼 장관의 '들러리 역할'에 반발한 것이다.
마틴 뎀프시 전 합참의장을 비롯한 퇴역장성들도 시위 대응에 군이 끌려들어 가는 데 대한 공개비판에 나섰다.
급기야 에스퍼 장관은 3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 시위진압에 군을 동원하는 건 마지막 수단이라며 군 동원을 위한 폭동진압법 발동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충성파로 분류돼온 에스퍼 장관으로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군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교회 방문 일정은 알았지만 사진촬영을 하는 줄은 몰랐다고 군색한 변명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군 동원에 대한 군내 혼란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군 수뇌부가 계엄령을 향한 조치에 동참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을 분열시킨다며 맹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50년 전 군에 몸담으면서 헌법을 수호한다고 맹세했는데 같은 선서를 한 군이 시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도록 명령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동맹을 중시하는 매티스 전 장관은 반대 입장의 트럼프 대통령과 번번이 충돌하다 재작년말 사직서를 던졌고 퇴임 후 회고록을 냈으나 정면 비판은 삼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의 작심발언에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이 자신의 편을 확실히 들지 않는다고 보고 불만을 가져왔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역시 군의 반발을 감안한 듯 시위진압용 동원 구상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도 보였다. 3일 인터뷰에서 군 투입은 상황에 달린 것이라며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독립기념일 행사에도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고 군 수뇌부를 대거 초청, 군 정치화 논란을 불렀다. 당시 당파성 없이 축제로 치러지던 독립기념일 행사를 사실상 재선용 정치행사로 치르면서 정치관여가 금지된 군을 동원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na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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