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이 9일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에 요구하면서 그 진의에 관심이 쏠린다.
'인수 포기설' 등 각종 추측성 보도에도 한동안 침묵하던 현산이 재협의를 요구한 것을 물밑 협상을 통해 인수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인수 포기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현산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상황을 재점검하고 인수조건을 재협의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2주 전 "이달 말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밝혀야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고 압박한 데 대한 회신 격이다.
현산은 먼저 '인수 포기설' 등 세간의 추측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은 등 계약 당사자들 간의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인수가 성공적으로 종결되길 희망한다"며 채권단 역할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현산은 인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국내외 로펌을 고용해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인수자금 조달계획에 따라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금융기관 대출 등을 차질없이 실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사내에 미래혁신준비단을 출범해 인수 준비에 매진하고 있으며 부문별로 외부 전문기관을 선임해 상당한 규모의 비용과 인원을 투입해 인수 후 통합(PMI)에 필요한 여러 컨설팅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 인사·조직통합 전문 컨설팅사 콘페리헤이그룹과 컨설팅을 진행했고, EY한영회계법인과 회계 관련 컨설팅을 수행하는 등 차질 없는 인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동안의 인수 노력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수가 불발될 경우 책임이 현산에 없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산은 이날 채권단에 구체적인 재협상 조건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장문의 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이 인수 체결 이후 크게 악화했다는 점을 강조해 인수 가격 낮추기를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산은 계약 체결 후 불과 5개월 사이 아시아나항공 부채가 무려 4조5천억원 증가하고, 부채비율이 작년 6월 말 대비 1만6천126% 급증하는 등 재무 상태가 악화했음을 강조했다.
1분기 말 현재 자본총계도 작년 6월 말보다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당기순손실도 모두 8천억원 이상 확대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인수 계약 후 금호산업[002990]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행태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4월 현산 컨소시엄에 긴급자금 1조7천억원 추가 차입 및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정관 변경, 임시주주총회 개최 계획 등을 통보했지만, 사전동의 없이 이사회를 열어 이를 승인하고 부실 계열사에 1천400억원 지원을 통보한 것도 문제 삼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11회 공문 등을 통해 정확한 현재 재무 상태와 전망 등 자료를 요구했으나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현산은 산은과 협의를 반기며 적극적인 개입을 기대했다.
현산은 "산은에 이번 공문을 통해 직접적인 논의가 가능해진 데 대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국책은행인 산은과의 대승적 차원의 실질적인 논의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수 계약의 주체는 금호산업이지만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산은 등 채권단과 물밑 협상을 통해 인수 조건을 바꾸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현산이 구주 인수 가격을 내리고 신주 가격이나 수량을 조정하는 방안을 산은 등 채권단에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인수 가격을 낮추려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산은 내부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이 고사 위기인 상황에서 아시아나 매각을 위해서는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협상을 시작하더라도 입장 차이가 커 매각이 결국 무산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산이 아시아나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시아나 인수의 득과 실을 다시 따지면서 결국 '승자의 독배'를 피하기 위해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날 장문의 발표는 이를 위한 수순 밟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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