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시민단체 실태 고발에 "예상보다 열악함 확인…미진한 점 사과"
(세종=연합뉴스) 오예진 기자 = 해양수산부가 외국인 선원의 인권 침해와 근로환경 개선을 골자로 한 시책을 내놨지만 대부분 이미 발표된 정책의 '재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미 완성 단계인 정책을 국민에게 설명하려는 취지에서 발표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외국인 선원 처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해양수산부는 9일 외국인 선원에 대한 인권 침해가 적발되면 사업주의 면허를 취소하는 등 엄벌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과 취업 비용 등을 개선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시책으로 꼽히는 외국인 선원 숙소 개선안은 기시감(旣視感)이 크다.
20t 이상의 어선에 대해 외국인 선원의 숙소 기준을 마련하고, 과도한 근로시간 해결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국제노동기구(IL0) 어선원 노동협약(C.188)의 국내 비준을 검토한다는 내용인데, 해수부가 5개월 전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1월 해수부는 외국인 선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원양어선에 거주공간을 확보하는 내용의 국제협약 비준을 검토하고, 선박 내 침실·욕실 등 최소한의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을 만든다고 했는데, 비슷한 발표를 또 한 셈이다.
원양어선 선원들의 생활 여건 개선책도 유사하다.
2023년까지 5년간 1천700억원(정부 출자 850억원 포함)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40년 이상 된 원양어선을 새로 건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은 올해 1월에 발표된 데 이어 이날 다시 해수부가 추진할 시책으로 소개됐다.
아울러 외국인 선원의 근로 실태조사를 연 2회로 강화한다는 발표 내용은 지난달에 한차례 나온 내용이다.
이날 발표된 시책 가운데 새로 나온 내용은 외국인 선원의 국내 취업과 관련해 장기적으로 공공기관인 수협이 외국인 어선원 도입 절차를 총괄관리 하도록 하고, 외국인 선원에 대한 인권 침해를 처벌하는 내용이 전부다.
이처럼 해수부가 이미 발표했던 외국인 선원 처우 개선책 등을 다시금 취합해 제시한 것은 최근 외국인 선원 인권 문제를 고발한 시민단체의 발표에 서둘러 반응하겠다는 의욕이 앞섰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전날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한국 어선에서 발생하는 외국인 선원 인권침해 및 불법 어업 실태'를 주제로 간담회 및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선원의 저임금 및 폭행 피해 문제 등을 고발했다.
이로부터 단 하루 만에 해수부는 기존에 마련된 정책 방안들이 대부분인 보도자료를 만들어 취재기자들에게 배포하고 정책 설명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 선원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정부가 지나치게 '민첩하게' 대응했다는 것이 아니라 재탕식 시책들을 내세움으로써 외국인 선원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진정성을 두고 '뒷말'을 남기게 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외국인 선원 인권 문제를 고발한 시민단체는 특정한 정책을 마련했다는 것보다는 외국인 선원 처우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보려는 진정성과 의지가 중요하며 이번 정책 발표에는 그런 점을 찾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원이주노동자인권개선네트워크 관계자는 "(해수부의 발표 내용은) 시민단체에서 10년간 제기했던 내용이 대부분이고 공공성 강화나 근로조건 개선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이 빠져있다"면서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계획도 빠져있어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해수부 관계자는 "외국인 선원과 관련해서는 올해 1월부터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운영 중이었고 시민단체와는 계속 의사소통을 해왔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시민단체 측) 기자회견 일정도 대략 예상했다"면서 "해수부도 내부적으로 대책을 거의 완성해 놓은 단계였고 (기자회견에 따른) 국민 등의 궁금증도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발표를 결정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어 "전날 보도된 내용을 통해 외국인 선원들이 예상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외국인 선원의 인권보호에 대해 다소 미진한 점이 있었음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ohye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