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년]① 폐허의 한국 축산업 되살린 '노아의 방주' 작전

입력 2020-06-21 08:30   수정 2020-06-21 09:39

[6·25전쟁 70년]① 폐허의 한국 축산업 되살린 '노아의 방주' 작전
美 헤퍼, 25년간 가축 3천200마리·종란 21만개 제공
연세우유도 헤퍼 제공 젖소로 출발…축산 농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 편집자 주: 70년 전 발발한 전쟁의 상흔은 도시·농촌을 막론하고 크고 깊었습니다. 논밭은 탱크와 장갑차 궤도에 엉망이 되었고 피란민들이 방치한 가축은 굶어 죽거나 약탈당해 씨가 말랐습니다. 미국 비정부기구(NGO) 구호·개발단체 헤퍼 인터내셔널은 1952년 4월부터 닭 종란(種卵)과 젖소, 돼지, 염소 등 다양한 가축을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 농촌에 보냈습니다. 헤퍼가 보낸 가축은 전쟁으로 무너진 우리 축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밀알이 되었습니다. 연합뉴스는 6·25 70년을 앞두고 미공개 자료를 발굴해 한국축산업 재건에 기여한 주역들의 활동과 그 의미를 짚어보는 기사 세 편을 송고합니다.]



(서울·안동=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전쟁으로 축산업 기반이 무너진 한국에 '구호 가축'을 보내 희망을 심자…우유 한 잔을 주기보다 젖소 한 마리(not a cup of milk, but a cow)를 보내 자립을 돕자."
6.25 전쟁 발발 후 미국의 수송선들은 병력과 탱크, 장갑차 등 무기와 전쟁 물자를 바다 건너 한반도로 실어 날랐다.
전쟁물자를 싣고 태평양을 건너는 수송선에서는 특이하게도 '카우보이모자'(텐 갤런 해트,Ten-gallon Hat)를 쓰고 가죽 부츠를 신은 목동들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 美 비영리기관 헤퍼, 한국에 '가축 구호'…가축 3천200마리·닭 종란 21만개 지원
이들은 미국 아칸소주 소재 국제개발 비영리기관인 헤퍼 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 이하 헤퍼)이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 작전(Operation Noah's Ark for Korea)'으로 명명해 추진한 '가축 구호' 사업에 참여한 해상 목동들이다.
헤퍼는 1951년 실태 조사를 통해 전쟁으로 한국 농가의 주요 자산인 가축이 대부분 사라졌고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헤퍼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함께 '한국을 위한 종란 보내기(Hatching Eggs for Korea)' 사업을 추진한다.
1951년 1월 당국의 승인을 받았고 이듬해 2월 계란 회사 크레이턴 브라더스로부터 종란(種卵) 7만개 기증을 약속도 받았다.
헤퍼는 이듬해인 1952년 4월 1일 인디애나 미드웨이 공항에서 항공기에 계란 200상자를 1차로 실어 보낸다. 종란 수송에 동원된 더글러스 DC-4는 근거리 여객기로 미니애폴리스와 시애틀, 앵커리지, 알래스카, 도쿄 등을 경유해 사흘 후인 4일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이후에도 헤퍼는 2차례 수송 작전을 통해 총 21만 6천개의 계란을 한국에 보냈다. 또 돼지, 염소, 닭, 토끼와 꿀벌 등도 순차적으로 한국 땅으로 옮겼다.
헤퍼는 1976년까지 총 3천200여마리의 가축을 한국에 제공했다. 젖소 897마리, 황소 58마리가 한국에 왔다. 이 중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기증한 황소 1마리도 포함됐다.





◇ 한국 축산업 재건의 '밀알'…연세우유도 헤퍼 구호사업 수혜로 시작
헤퍼가 태평양을 건너 수송한 가축들은 3년간의 전쟁으로 망가진 축산업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데 '종자' 역할을 했다.
한국에는 대한제국 시절이던 1902년 홀스타인 젖소 20마리가 도입되면서 미약하나마 낙농업 기반이 생겼다. 그러나 3년간의 전쟁은 모든 걸 무너뜨렸다.
헤퍼의 가축 구호 수혜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재복(83)씨는 "한우는 드물게 눈에 띄었지만 다른 가축은 거의 없었다"고 전후 한국 농촌의 상황을 회고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 70년 보고서'에도 전쟁 전인 1949년 61만 마리였던 한우가 39만 마리로 줄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헤퍼가 한국의 기독교 연합봉사회를 통해 제공한 젖소 품종은 홀스타인, 저지(JERSEY), 건지(GUERNSEY) 등이었다. 헤퍼는 젖소를 농가에 '대부'(loan) 형식으로 기증하고 첫 새끼를 낳으면 연합봉사회를 통해 다른 농가에 제공해주는 '선물 이어가기(passing on the gift)'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 농가가 보유한 젖소 수는 점점 늘어갔다.



1970년대 초 화물(컨테이너) 수송선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축 수송선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자 헤퍼는 수송 수단을 항공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항공기를 이용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늘어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72년 당시 70마리의 젖소를 항공기로 한국에 보내는 데 약 2만 8천달러의 수송비가 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헤퍼의 가축 구호 덕에 연세우유도 탄생했다. 가축 구호에 소 관리자로 동참했던 진 바운티스는 헤퍼가 제공한 젖소 10마리로 연세우유 사업이 시작됐다고 기록했다.



헤퍼의 젖소 수송선이 한국에 마지막으로 온 것은 1973년 8월이었다.
헤퍼는 전국 축산농가에 젖소 등 가축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육 방법 등에 대한 교육도 병행했다. 그리고 한국의 축산 기반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판단한 1976년 한국에서 철수했다.
경북 안동에서 농장을 운영 중인 이재복씨는 "헤퍼가 1973년에 보내준 젖소 두 마리를 키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젖소 이외에 당시 국립 종축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요크셔, 두록저지 등 품종의 돼지를 기증해준 것도 우리 농촌 부흥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duckhw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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