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이슈 멀어지자 목소리 힘 잃어…대안세력 입지 다지는데도 실패
전체 극우세력 위세는 여전…또다른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 급부상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정계를 좌지우지하던 극우 정치인 마테오 살비니의 영향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급격히 위축되는 모양새다.
9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실시된 정당 지도자 신뢰도 조사에서 극우 정당 동맹 소속의 살비니 상원의원은 31.2%로 같은 극우 성향인 이탈리아 형제들(FdI) 대표 조르지아 멜로니에 2.0% 포인트 차로 뒤졌다.
극우세력의 좌장으로 인식되던 그에게 다소 충격적인 조사 결과다.
살비니가 속한 동맹의 지지율 역시 몇 달째 25% 근처를 맴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정당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작년 한때 35%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당세가 크게 약화했다.
살비니는 2018년 6월 동맹이 정치 지향점이 전혀 다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구성한 연립정부 내에서 내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국제 구호기구 난민 구조선의 자국 입항을 금지하는 등 반(反)난민·이주민 정책을 주도하며 주가가 급상승했다.
작년 8월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조기 총선을 통해 단독 집권하려는 욕심으로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자충수를 뒀지만, 이후에도 주요 지방선거에서 연승을 거두며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 속에 그의 존재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정계 최고의 뉴스메이커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 2월 이후 현지 언론에서 살비니에 대한 보도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는 지난 2일 로마에서 멜로니 등과 함께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실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주도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사라지고 집회 와중에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안전거리를 무시하는 등 방역 규정을 어겼다는 논란만 남겼다.
8일 발행된 현지 유력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평소 지론대로 현 정부의 퇴진과 조기 총선을 주장했으나 정부 지지율이 50% 안팎에 이르는 현 정국 상황에선 공허한 메아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살비니가 갖는 대중적 인기의 원천인 난민·이주민 이슈가 코로나19로 뒤로 밀리면서 그의 존재감 역시 희미해졌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확산하며 국가적 위기가 가중하던 상황에서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춘 대안 세력으로 입지를 다지는 데 실패했는데 시각도 있다.
살비니는 지난 3월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자 정부가 취한 고강도 봉쇄 정책을 앞장서서 반대했다가 연일 인명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밀라노의 한 정치학자는 AFP 통신에 "살비니가 난민·이주민 이슈와 달리 코로나19 대응에서는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살비니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극우 세력 자체가 약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8년 총선에서 4.3% 득표에 그친 FdI가 지지율을 15% 가까이 끌어올리며 극우 세력의 새로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창당한 중도 우파 성향의 '전진 이탈리아'(지지율 5%) 등이 가세하면 우파연합 지지율은 50%를 넘는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총선이 실시된다면 우파의 집권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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