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도중 숨진 이튿날부터 시위…미 넘어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
가담 경찰 4명 전원 기소…'경찰 개혁' 등 사회 변화 미지수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전 세계로 번져나가게 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46)가 마침내 9일(현지시간) 고향인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메모리얼데이 휴일이었던 지난달 25일 저녁 무렵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의 식료품점 앞 길바닥에서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을 눌려 싸늘한 주검이 된 지 15일 만이다.
그에게 제기된 혐의는 20달러짜리 위조지폐 사용이었으나 법정은커녕 경찰서까지 가보기도 전에 사형 집행을 당한 셈이다.
현장을 지나던 행인이 찍은 동영상 속 플로이드의 모습은 참혹했다.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쉰 목소리로 "숨 쉴 수가 없다"고 울먹이듯 호소했다. '엄마'라고 부르짖기도 했고 '제발'이란 단어도 거듭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나 엎드린 그의 목을 짓누른 백인 경찰관의 무릎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동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공분을 실어 날랐다.
플로이드의 목을 요지부동으로 누른 미니애폴리스 경찰관 데릭 쇼빈(44) 등 당시 체포 현장에 있던 경찰 4명은 결국 이튿날 전원 해고됐다.
그러나 그날 밤 미니애폴리스 거리에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다. 경찰차가 부서졌고 경찰서 벽에는 그라피티(낙서)가 그려졌다. 전 세계로 번진 인종 차별 항의시위의 시작이었다.
그다음 날 시위는 더 거칠어졌다. 시위대는 수천 명으로 불었고, 식당과 대형마트, 자동차 부품점 등은 불길에 휩싸인 채 약탈 대상이 됐다. 쇼빈이 일하던 경찰서도 불에 탔다.
시위는 분노를 타고 다른 도시로도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플로이드 사건 전 이미 억울하게 숨진 흑인 아머드 아버리, 브레오나 테일러 사건까지 떠올리며 멤피스와 로스앤젤레스(LA), 포틀랜드 등에서 격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플로이드가 죽기 전 내뱉은 '숨 쉴 수가 없다'는 문장은 인종 차별의 무게에 짓눌려온 시위대의 구호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격앙된 시위대에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대신 군 투입과 총격으로 맞서겠다며 주먹을 치켜올려 분노를 키웠다.
그는 지난달 29일 새벽 시위대를 '폭력배'로 규정하면서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표현은 1967년 월터 헤들리 당시 마이애미 경찰서장이 흑인 시위에 맞서 폭력적 보복을 공언하며 한 발언이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 때문에 이 트윗은 정치권 등에서 큰 논란이 됐고, 트위터는 '폭력 미화'라며 이 트윗을 차단했다.
같은 날 미네소타주 헤너핀카운티 검찰은 쇼빈을 체포, '3급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위협이나 쇼빈의 체포 소식은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날 밤 수도 워싱턴DC와 애틀랜타, 브루클린, 맨해튼, 디트로이트 등 주요 도시로 시위가 확산했다.
경찰을 향해 물병과 돌이 날아가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곤봉으로 맞섰다.
시위의 폭력성은 일요일인 지난달 31일 정점에 달했다. 전국 각지에 모인 수십만명의 시위대는 낮 동안 대체로 평화롭게 시위를 했지만, 밤이 되자 경찰과 충돌했고 무차별인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시위에 나선 수백명이 체포됐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일 백악관 건너편 교회 앞에서 성경을 손에 든 채 사진을 찍었다. 특히 이 교회로 가는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평화롭게 시위하던 시위대에 최루탄과 고무탄 등을 쏴 해산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플로이드 사망 후 미국의 140개 이상 도시에서 수십만명이 시위를 벌인 것으로 집계했다.
약탈과 방화에 대한 비난이 커진데다 21개 주에서 주 방위군이 동원되고 주요 주들에서 야간 통행금지령이 발령되면서 항의시위는 평화롭고 차분해지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지난 3일 미네소타주 키스 엘리슨 검찰총장은 쇼빈에게 더 중한 범죄인 '2급 살인' 혐의를 추가하고, 쇼빈과 함께 있었던 나머지 경찰관 3명도 모두 기소했다. 동료 경찰관들에게는 '2급 살인 공모' 등 혐의가 적용됐다.
엘리슨 총장은 다만 "여기(유죄 입증)에 분명한 도전이 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며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플로이드는 9일 학창 시절을 포함해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휴스턴의 외곽 메모리얼 가든 묘지에 묻혔다. 어머니가 묻힌 바로 옆자리다.
그를 떠나보내는 추모 행사는 지난 4일 그의 마지막 삶의 터전이었던 미니애폴리스를 시작으로 6일 플로이드가 태어난 노스캐롤라이나주, 8일 휴스턴에서 이어졌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일깨운 응축된 분노가 얼마나 세상을 변화시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미니애폴리스 시의회가 경찰 예산 지원 중단과 경찰 해체를 선언하고, 미니애폴리스시는 경찰관의 목 조르기를 금지하기로 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는 경찰에 지원하던 예산을 다른 사회복지 분야로 돌리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은 경찰의 폭력 등에 면책 특권을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경찰 개혁법안을 내놨다.
정의 실현과 인종 차별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의 열기도 식지 않고 있다.
AP 통신은 장례식에 맞춰 "조지 플로이드는 전 세계에 변화의 힘을 일으킨 '빅(Big) 플로이드'가 됐다"고 전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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