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역성장 뻔한데 증시 고공행진…투기성 개미 탓? IT 공룡의 힘?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제난에도 나스닥 지수가 이틀 연속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미국 증시가 고공 행진하면서 거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영난에 처한 항공사나 파산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고 정보기술(IT) 대표 기업을 일컫는 용어인 '팡'(FANG)과 비슷한 표기의 'Fangdd'라는 기업의 주식예탁증서(DR) 값이 이유 없이 세 자릿수의 상승률을 보이는 등 이상 징후가 속출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코로나19 이후 개인 투자자가 증시에 대거 유입된 한국의 '동학 개미' 현상처럼 미국 증시에도 젊은층 유입이 많았는데, 일확천금을 노린 초보 투자자들의 투기성 거래가 주가의 이상 급등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 뻔한데 코로나19 잊은 주가
최근 주요 전망 기관들의 성장률 전망에서 미국 경제도 다른 주요국처럼 올해 역성장이 예상돼왔다. 그러나 증시만 보면 코로나19는 거의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9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9.01포인트(0.29%) 상승한 9,953.75에 거래를 마쳐 이틀 연속 종가 기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는 10,002.50까지 올라 사상 처음으로 지수 10,000선을 넘었다.
지난 3월 23일 장중 저점(6,631.42)과 비교하면 무려 50%가량 급등했다.
나스닥 지수만 보면 경제는 코로나19 여파를 완전히 벗어나 전도유망한 상황을 앞둔 것 같다.
초대형 블루칩으로 구성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나 뉴욕 증시 전반을 반영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나스닥에는 못 미치지만 역시 3월 저점 대비 40%대의 놀라운 반등세를 보였다.
경제 매체인 블룸버그는 "S&P500의 경우 역대 가장 가파른 하락장 전환에 이어 최근 50일간은 90년 만에 가장 빠른 반등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처럼 빠른 증시 회복 배경에는 코로나19 여파에도 비대면(언택트) 바람을 타고 양호한 실적을 올린 IT 기업들의 활약이 컸다.
이날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의 주가는 전날보다 3.16% 오르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시총은 1조4천900억달러로 늘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전날보다 0.76% 상승한 189.80달러(시총은 1조4천400억달러), 아마존은 3.04% 오른 2천600.86달러(시총은 1조3천억달러), 페이스북은 3.14% 상승한 238.67달러(시총은 6천800억달러)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IT '빅5' 중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빼고는 모두 주가가 사상 최고치로 올랐다.
◇ 이상 신호 속출…"증시 반등에 투기적인 성격"
그러나 IT 기업의 활약만으로는 최근 증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예컨대 파산 기업이라는 딱지가 붙은 기업의 주가가 이상 급등하고 있다. 헤르츠는 최근 3거래일간 주가가 577%나 올랐고, 휘팅페트롤리엄은 8일 하루 152% 상승했다.
캘리포니아 리소시즈 등 파산 신청 예정 업체들의 주가 흐름도 비슷했다.
게다가 중국의 부동산 업체인 'Fangdd'라는 기업이 나스닥에 상장한 주식 예탁증서의 가격은 9일 하루 395%나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특별히 오를 만한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FANG 주식에 신호가 온 날 조건반사식 투자 열기가 이 기업에 함께 몰렸든가 단순히 이름에 의한 착오 탓"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런 '비이성적인' 주가 상승 배경으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가 급락한 틈을 타 일확천금을 노리고 새로 증시에 뛰어든 개인들의 도박꾼 식 투자가 지목되고 있다.
일례로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주식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인 로빈후드를 통해 지난주 파산기업 헤르츠를 산 투자자가 9만6천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용자의 평균 나이가 31살인 로빈후드 앱은 올해 1분기에만 신규 계정이 300만개나 늘었다.
많은 월가의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도박꾼 행태가 이번 증시 반등에 얼마나 투기적인 성격이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미 CNBC 방송은 전했다.
◇ 확산되는 거품론…니콜라 등 새내기 주에도 부정 의견 나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가 거품론도 확산하고 있다.
자산관리 서비스 회사인 블리클리 파이낸셜 그룹의 피터 북바는 "시장 일부에 거품이 뚜렷해 보인다"면서 "(카지노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다시 문을 열었지만 주식 시장이 대신 역할을 해주는데 라스베이거스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주가에 거품이 낀 배경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로 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꼽았다.
금융 중개회사인 존스 트레이딩의 시장 전략가인 마이클 어러크는 "연준이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파괴했다는 것을 어느 시점에 깨닫게 될까"라고 비꼬았다.
특히 MAI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주식 전략가인 크리스토퍼 그리산티는 파산 기업의 주식을 사는 행태에 대해 "떨어지는 칼을 잡는 것처럼 너무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과열 양상이 빚어지면서 기업공개(IPO)로 새로 상장한 업체들의 주가도 대체로 고공 행진을 하는 가운데 일부 새내기주에 대해서도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이드하우스 인사이츠의 운송산업 담당 연구원인 샘 아부얼사미드는 지난 4일 나스닥에 상장한 뒤 주가가 급등한 니콜라와 관련해 "사람들이 니콜라를 제2의 테슬라로 보고 있지만 바보 같다"며 "투자자들도 우스꽝스럽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니콜라는 한화그룹의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투자해 화제를 모은 수소전기트럭 생산기업이다.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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