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여성기구 컨설턴트 현혜리씨 등 귀국 대신 체류 선택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가진 게 많지 않은 나라라서 지금 상황이 겁도 나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남았어요."
유엔여성기구(UN Women) 동티모르 사무소 컨설턴트 현혜리(41)씨는 15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전화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귀국하지 않고 현지 체류를 선택한 이유와 최근 상황을 전했다.
현씨는 2018년 11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소속 국제개발 전문봉사단으로 유엔여성기구 동티모르 사무소로 파견돼 1년 4개월간 근무하고 올 3월 임무가 끝났지만, 현지 사무소와 다시 컨설턴트 계약을 체결했다.
동티모르는 올해 3월 코로나19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같은 달 30일부터 모든 여객기 운항이 무기한 중단됐다.
한국 교민 220여명 가운데 코이카 단원 94명을 포함한 110여명이 여객기가 끊기기 전 귀국했다. 지난달 25일에는 추가로 10명이 다국적 전세기를 타고 동티모르를 빠져나왔다.
현씨는 "코이카 소속이었다면 지침상 철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때마침 임무가 끝나 남을 수 있었다"며 "현지 여성들을 위해 계속하던 일이 있기에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동티모르의 유엔빌리지에는 현씨를 포함해 한국 여성 5명이 유엔여성기구(UN Women), 유엔개발계획(UNDP), WHO(세계보건기구), WFP(유엔세계식량계획)에 남아 계속 일하고 있다.
현씨는 지난 15년간 유엔기구 등을 통해 개도국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펼쳐왔다.
그는 "여성이 집에서 만든 음식이나 농작물을 키워 파는 등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이들의 비즈니스 인식과 역량을 높이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내 임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남성은 돈을 벌어도 술을 마시고, 도박하는 등 개인적 활동에 많이 쓰는 반면 여성은 가족 부양에 돈을 쓴다"며 "여성의 경제역량이 강화돼야 그 나라의 어린이 건강·교육 문제까지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성화되려면 '여성에게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현씨는 "동티모르는 성추행·성희롱이 너무 만연하다"며 "일자리가 없는 남성들이 하릴없이 길가에 앉아 술·담배를 하며 지나가는 여성을 놀리거나 시비 거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활동을 하던 여성도 그런 일을 겪으면 더는 집 밖에 나가지 않으려 한다"며 "성폭력은 예방이 최선이기에 교육 동영상을 만들어 전광판에 노출하고, 피케팅도 하고, 여성 상인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어떻게 하는지 교육을 하는 등 할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동티모르는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1999년 독립한 최빈국이다.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을 지낸 사나나 구스마오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초기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며 중국 우한에 있는 자국민 유학생 17명을 함께 데려와 달라고 인도네시아에 부탁했을 정도다.
동티모르 유학생들은 결국 뉴질랜드 정부가 우한에서 철수시켜줬다.
동티모르는 코로나19 검사를 할 능력이 없어 의심 환자 검체를 호주 실험실로 보내다 지금은 자체 분석이 가능해졌다.
강원도 크기, 인도 130만명의 동티모르에 코로나19 확진자는 공식 집계상 24명뿐이다.
현씨는 "동티모르 정부가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문을 걸어 잠근 게 효과가 있는지, 한 달 넘게 신규 확진자가 없다"며 "차츰 규제를 완화하고 있으나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는 철저히 지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 발생 후 현지 여성들의 활동은 더 줄었다"며 "꾸준히 인식개선을 위해 현장을 뛰고, 공무원을 만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씨는 "코로나19 사태로 두려움도 있지만, 체류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이런 상황을 동티모르에서 겪으면서 이 나라에 대한 이해와 애정, 적응도는 더 커진 것 같다"며 "상록수부대 등 한국과 인연이 많은 나라이기에 국내에서도 관심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희망을 전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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