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밀어주는 하이난에 중국 쇼핑객 밀려들었다

입력 2020-06-15 14:05  

시진핑이 밀어주는 하이난에 중국 쇼핑객 밀려들었다
시위로 밉보인 홍콩과 극명한 대조…'코로나19 특수'까지
'제2홍콩' 기대감 크지만 '자유 없는 자유무역항' 한계 지적도


(싼야=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안에 고객이 이미 다 찼습니다. 30분 정도 줄에서 기다리셔 주셔야 합니다."
패션 명품 구찌 매장 입구에 선 건장한 보안 직원이 입장 대기 시간을 묻는 고객들에게 같은 답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찾아간 중국 하이난(海南)성의 초대형 시내 면세점인 '싼야국제면세성'(cdf몰)에는 마스크를 쓴 손님들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가방 하나에 수백만원씩 하는 고가 패션 매장일수록 입장 대기 줄이 더 길었다.
화장품 매장엔 특히 많은 고객이 몰렸다. 인파를 헤집고 물건을 골라 값을 치르고 다시 매장을 빠져나오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넓이가 8만㎡에 달해 세계 최대 시내 면세점이라는 싼야국제면세성은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오히려 더 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중국이 코로나19 '유입'을 막겠다면서 사실상 외국인 입국을 전면적으로 막고 있어 이곳을 찾은 고객 절대다수는 중국인이었다.
싼야국제면세성은 국영기업인 중국면세품(CDF)그룹이 운영하는 곳이다.
면세전문지 무디리포트에 따르면 CDF그룹은 2018년 43억9천4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린 세계 4위 면세점 업체다. 전년도 8위에서 단숨에 순위가 네 계단 뛰어오를 정도로 성장세가 강하다.
중국에서는 홍콩의 내부 정치 갈등 장기화와 코로나19 사태가 하이난 면세점 업계에 전례 없는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본토와 직접 연결된 홍콩은 전통적인 중국인들의 '쇼핑 성지'였다. 홍콩에 즐비한 패션 명품 매장의 고객 절대다수가 중국 본토에서 온 이들이었다.
하지만 작년 6월부터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반중 정서가 급속히 고조되면서 홍콩을 찾은 중국 본토 관광객들이 급격히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중국인들이 전처럼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된 점은 하이난의 쇼핑 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싼야국제면세성 직원인 왕(王)씨는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된 관광객들이 면세점이 있는 하이난에 오면서 고객이 코로나19 전보다 오히려 늘어났다"고 전했다. 하이난은 유일하게 중국인들이 국내에서 면세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한국 등 해외 면세점을 돌면서 물건을 대량으로 싸게 사들여 국내에 되팔아 이익을 남기던 '다이거우'(代購)들도 코로나19 여파로 하이난 면세점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처럼 홍콩과 하이난 쇼핑 업계의 명암이 엇갈리는 가운데 향후 이런 흐름은 더욱더 빨라질 전망이다.

중국 당·정이 남한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는 하이난섬을 통째로 국제적인 수준의 자유무역항으로 키우기로 하면서 장기적으로 중국 당·정에 밉보인 홍콩의 기능을 서서히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벌써부터 하이난 면세점에 고객이 넘쳐나는데 앞으로는 연간 1인당 3만 위안인 면세 쇼핑 한도가 10만 위안(약 1천700만원)으로 높아진다. 하이난 면세점 업계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쇼핑 등 여행 분야 외에도 중국은 하이난을 현대 서비스업, 하이테크 기술 산업이 어우러지는 자유무역항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수입 관세를 대부분 없애고 항운, 통신, 비즈니스 서비스, 금융, 의료,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서비스 분야를 개방함으로써 사람과 자본, 상품이 국경의 장벽 없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자유무역항을 만들겠든 것이 중국의 장기적인 목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밀어붙이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되는 자유무역항 계획에 하이난 주민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이난 태생으로 관광업에 종사하는 우(吳)씨는 "오랜 기간에 걸쳐 추진될 계획이지만 하이난 사람들이 거는 기대감 당연히 크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당·정의 전폭적인 지원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의 최남단 섬인 하이난이 관광·무역·첨단 제조업·서비스 산업이 어우러지는 제2의 홍콩으로 성장하는 데는 여러 도전도 예상된다.

무엇보다 중국이 하이난을 중국 최고 수준의 개방 지역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는 있지만 외국 투자자들이 홍콩에서와 같은 높은 수준의 자유와 중국 본토와 구분된 사법 시스템을 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류츠구이(劉賜貴) 하이난성 당서기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하이난 자유무역항은 중국 특색사회주의 제도의 자유무역항"이라며 "국가 안보를 위협하거나, 이념적으로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려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항아' 홍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교훈을 얻은 중국은 하이난을 세계적 수준의 자유무역 지대로 키우겠다면서도 사상적인 '누수'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경 원칙을 천명했다.
단적인 예로 홍콩에서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지메일, 유튜브, 카카오톡, 라인, 구글 검색 등의 인터넷 서비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하이난에서 '사상 누수'로 이어질 수 있는 이런 인터넷 서비스가 허용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다.
서방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중국 본토에서 머무르며 비즈니스를 하는 외국인들이 겪는 먼저 마주하는 불편 중의 하나다.
인적 자원의 부족과 제한적 규모의 자체 시장도 하이난의 약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하이난의 상주인구는 940여만명으로 적은 편이어서 기업들이 인구가 밀집한 동부 연안 지역과 달리 하이난에서는 대규모 인력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다.
황재원 코트라 광저우(廣州)무역관 관장은 "중국 정부가 마음 먹고 밀어주기로 결정을 한 이상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인프라 등을 크게 개선하고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 기업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기존에 산업이 발달했던 지역이 아니고 홍콩과 싱가포르와 같이 배후 지역도 없는 하이난이 국제적 자유무역항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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