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천300만명 끌어당기는 관광요인…'코로나 확산에 완벽한 공간'으로 전락
클럽 애호가와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했으나 한계 봉착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세계 나이트클럽의 수도 베를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독일의 코로나19 통행 제재는 이제 역사가 됐지만, 베를린의 나이트클럽들은 아직 영업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유럽에 상륙한 지 4개월째인 가운데, 베를린의 전설적인 테크노 클럽 트레조르, 라이벌 클럽 베르크하인 등 무수히 많은 나이트클럽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체념과 이에 대한 부정 속에 오락가락하고 있다.
1991년 트레조르를 설립한 소유주인 디미트리 헤게만은 "클럽 없는 베를린은 소금 없는 수프"라면서 "수프가 맛있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4년간 베를린에서 DJ활동을 한 이안 풀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클럽 경영자들이 조용한 우울 모드에 빠졌다"고 말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버려진 공장지대 등에서 즉흥적으로 벌어지곤 했던 자생적인 파티에 기원을 둔 베를린의 나이트클럽들은 매년 1천300만명의 관광객과 젊은 예술가들을 끌어모으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나 효과적인 치료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되살아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지원이나 클럽 애호가들의 기부로 파산을 미뤘지만, 이는 일시적 유예일 뿐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좁고 꽉 막힌 공간에서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땀 흘리며 소리지르고 춤추는 군중이 모여드는 나이트클럽은 코로나19 확산에 완벽한 공간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실제로 베를린의 최초 코로나19 확진자 중 일부는 나이트클럽에서 나왔고, 한국 서울에서도 지난달 한 확진자가 클럽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코로나19가 급속히 재확산하는 계기가 됐다고 WSJ은 설명했다.
클럽 소유주들은 파산의 물결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이트클럽 그레첸의 매니저인 파멜라 쇼베스는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아니면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그레첸은 7월 말까지 빚이 5만유로(6천8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업마진이 0.04%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대출 지원을 받는 것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독일 최대의 동성애자 클럽인 슈부츠는 팬들로부터 7만5천유로(1억2천만원)를 모금했지만 이는 5월 말까지 버틸 수단밖에 안됐다. 슈부츠는 파산을 면하기 위해 독일 연방개발은행으로부터 30만유로(4억1천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평균 10유로(1만4천원)의 입장료를 받아온 베를린의 나이트클럽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마진이 극도로 작았다. 51%는 손실을 보거나 본전 수준에서 영업했고, 나머지도 마진이 극히 일부 날 뿐이었다.
베를린의 나이트클럽들은 스스로를 문화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수익성이 아닌 분위기가 성공의 척도다. 덴마크나 독일 다른 지역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엄격한 보건 규칙을 지키면서 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베를린의 무제한 클럽 문화에서는 이런 영업이 불가능하다.
부르크하르트 키커 비지트 베를린 대표는 "완전한 자유가 베를린의 나이트 라이프를 특별하게 만드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루츠 라이히젠링 클럽협회 대변인은 "우리는 클럽 문화가 절반이나 4분의 1가량만 작동하는 꼴을 볼 수 없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수 클럽에서 DJ로 활동한 장-크리스토프 리터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잊고 노는 게 클럽 문화의 일부였는데, 이는 정확히 지금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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